문학의 위신은 떨어진지 오래이고 문학에는 '진정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뜻'있는 작가를 찾는 것도 어려운 시대다. 힘을 빼고 일상에 다가온 것은 좋지만,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라고 생각했을 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생각 없는 글은 독자에게 허탈감을 줄 뿐이다.

요즘은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고, '팔릴만한 책을 쓴 작가'가 '실력 있는 작가'다. 언제부터 '좋은 책'과 '실력 있는 작가'가 이렇게 변모했을까? '좋은 책'과 '작가'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다고 “밥은 먹고 살아야죠” 라며 “문학도 상업”이라고 말하는 출판업계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문학이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이기 때문에 그런 성토는 이제 어디에도 '먹히지' 않는다.

문학을 파는 장사꾼은 되도 '속물적인' 장사치가 돼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문학계의 문제는 문학이란 '상품'을 다루는 사람들이 점점 '속물'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계의 '속물근성' 가운데 '대필'이 있다. 지난 해 정지영 아나운서와 한젬마 화가의 대필 의혹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물론 '대필 논란'은 문학계의 고질병이었지만, 그들의 '뻔뻔함'에 독자들은 분개했다. 독자들의 반감이 극심하지만 '대필 해드립니다'라는 친절한 문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필 사이트'는 포털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편지부터 전문 서적에 이르기까지 대필의 유혹은 뻗어나가고 있다.

◆대필 논란에 나 몰라라 …

'대필 논란'의 비난은 고스란히 출판업계와 '얼굴 마담'들에게 돌아갔다. 거센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초지일관 '나는 모른다' 로 일관하고 있다.

출판사는 '돈이 되는' 상품을 만들려 한다. 때문에 '유명인' 에 집착한다. '스타'의 유명세로 책을 파는 '마케팅'은 이미 만연화 됐다. 하지만 '유명인' 중에 '작가'의 소양이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유명인 섭외는 '이미지 마케팅'이고, 그들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출판업계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선 유명인으로 홍보를 해서 효과가 있고 독자들도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 “ 필의 정도가 문제가 되겠지만 대필의 심각성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서 대필이 차지하는 '위치'는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는 “문학계에서 대필이 상용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출판사는 아니다”라고 말한 출판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타 마케팅'이 정말 효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유명인을 필자로 내세웠을 때는 반응이 바로 오는 편”이라고 말해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 대필사이트. 공개적으로 '대필'을 권유한다

◆대필에 대한 개념 부재와 간판주의 사회가 대필 논란 불러와

도서출판 개마고원 장의덕 대표는 “출판계의 대필 문제의 원인은 다각도에서 살펴봐야한다”고 말했다. 앞에서 말한 도덕 불감증과 스타마케팅 외에도 다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

장의덕 대표는 “현재 한국 문학에서는 저자군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이 무명작가의 노동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며 기존 작가와 무명작가와의 괴리가 큼을 시사했다. 또한 “외국에는 '공저'의 개념이 철저한 편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공저'가 활성화돼 있지 못하다. 때문에 사실상 공저를 했다고 해도 '대필'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필'에 대한 무개념이 문제다. 개념이 없다보니 '자각'도, '반성'도 없다.

또한 장 대표는 “간판주의 한국 사회가 대필을 조장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유명인을 선호하고, 소위 간판이 좋은 사람을 '대우'해주는 사회 문제가 문학계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가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논문 대필의 경우가 대개 이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생계형 작가의 막다른 선택, '대필'

스타급 작가가 아니고서야 글로 밥 벌어 먹고 살기는 힘들어졌다. 수입이 백만 원 미만인 문인들이 대부분이다. 한 시인은 “문득 작가가 '배고픈 직업'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라고 밝혔다.

신인 작가의 경우 '생계형'으로 '대필 작가'를 자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신춘문예 당선자도 예외는 아니다. 몇 해 전, 신춘문예에서 시로 등단한 작가는 “등단의 기쁨과 글 청탁도 잠시, 눈앞에는 '문학'이 아니라 '생존'만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대필을 자청했다는 이 시인은 “대필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고 전했다. 자기라고 왜 '자존심'이 없겠느냐 하는 것. 더불어 신인 작가의 경우 대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며 결국 대필 작가로 자리 잡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대필' 이라 하면 출판사나 얼굴마담이 질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필 작가는 빛을 보지 못한 불운의 작가로 취급됐던 것.

이에 대해 도서출판 개마고원의 장의원 대표는 “소위 마이너 필자라고 불리는 그들이 과연 창의적인 생산력이 있는 작가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필 작가들의 '작가'로서의 소질 여부를 문제 삼은 것. “그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 나은 글을 만드는데 소질이 있지만 그들 스스로 생산적으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문학이 상품이 되고, 작가는 글을 찍어내는 기계가 되고, 출판사는 장사치가 되는 요즘, 어느 누구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같은 문학계의 위기는 '문학계'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지금, 문학계와 문인들에 대한 질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문학계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한다. 한국 문학은 지금, '날마다 전쟁'을 하고 있다. 한국문학 전쟁은 '자기 파멸'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도약의 밑거름'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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