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패션에서 끝나지 않고 문학까지 표절

90년대 '표절'이 음반계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됐을 때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 것이 있었냐는 놀란 반응과 함께 거센 비난이 일었고, 표절 시비에 몰린 당사자들은 긴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표절'은 우리에게 더 이상 놀라움을 주지 않는다. 음악, 공연, 드라마, 영화, 쇼. 패션 등 장르를 막론하고 표절 시비가 일었고, 사람들은 점점 표절의 충격에 익숙해졌다.

표절 시비가 이는 것 대부분이 일본에 원작을 두고 있다. 일본 문화 콘텐츠는 일본 특유의 독특함이 여실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일본 문화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표절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한국 문화 콘텐츠는 일본과 흡사하다고 지적받았다. 주로 방송과 패션, 문학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 그 중 만화는 상황이 심각한 편이다. 중견 작가와 신인 작가 여부에 상관없이 표절 시비에 오르고 있고, 한국 만화에서 일본 만화와 유사한 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애니메이션의 최강국답게 일본의 만화 산업은 그 종류와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는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는 편이고 일본 만화의 한국 만화 시장 점유율은 가히 지배적이다.

만화의 특성상 구도와 캐릭터, 대사가 비슷해도 표절 시비가 쉽게 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독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만화가 매번 표절 시비를 받는 것은 참고의 수준을 넘어 베끼는 선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왼쪽이 '위치헌터' 오른쪽이 '베르세르크'
'위치헌터'의 조정만 작가는 표절 작가의 대표적인 주자로 꼽힌다. 소년지에 연재했던 '위치헌터'는 배경, 구도, 연출, 캐릭터 등에서 표절 시비가 일었다. 각종 게시판에는 표절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조정만 작가의 입장을 발표를 촉구하는 사이트까지 만들어졌다.

독자들과 조정만 작가 측의 수차례의 밀고 당기기 끝에 결국 조정만 작가와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일부분 표절을 인정하면서 사과문을 올리게 됐고, 표절 사태는 일단락 마무리 됐다.

서예린 작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예린 작가의 '내 ID는 성형미인'은 일본의 '동경 줄리엣'. '피치걸' 등 유명 순정만화를 대부분 '베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예린 작가의 안티팬 카페에서는 원작만화와 서예린 작가의 만화를 상세히 비교하며 표절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표절 여부에 대한 논란과 비난이 거세지고 안티 팬이 급증하면서 현재 서예린 작가는 인터넷 만화를 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서 작가의 근황은 뉴스에 방영될 정도로 화제가 됐었다.

◆만화가 협회와 독자는 동상이몽

독자들은 표절 여부에 민감한 반응이다. 직접 원작을 구해 비교를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만화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표절만화토론'이라는 게시판에서 김수연 씨는 “물론 작가에게 영향을 준 만화의 장면이 작품에 드러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도와 캐릭터, 배경 등이 모두 흡사한 것은 명백한 표절이다”라고 말했다.

▲ 만화 표절에 대한 게시판

또한 만화가 지망생이라는 권우현 씨는 “한국 만화가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출판계의 탓도 크다”면서 “외국은 만화가를 예술가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저임금의 노동자로 보고 이런 현실이 한국 만화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입장이 이렇지만 만화가협회 측은 이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사무국장 영진아 씨는 “요즘은 표절이 거의 없다. 예전에는 거의 베끼기 수준의 만화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출판계의 표절 요구가 있었고 그것이 관행으로 내려왔지만, 만화가 창작의 영역으로 인지되면서 그런 관행도 사라지고 있다. 출판계의 성향이 바뀐 것이 만화계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인터넷과 잡지가 보편화되면서 외국 만화를 쉽게 접하게 돼 더 이상 표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국 만화가 위기에 빠진 것은 분명 사실이다. 지배적인 외국만화의 시장 점유율과 표절논란, 공장만화, 그리고 만화가 예술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만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한국만화가협회 측은 한국 만화계가 가진 여건들에 대해 대부분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있다. 만화 자체가 개인 창작물이라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향후 사태 해결이나 현실의 문제를 바꾸는 것도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 만화 오염시키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일명 공장만화에 대해서 협회 측은 “공장만화는 오랫동안 한국 만화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만화가 있듯이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만화도 있어야 한다.

때문에 공장만화에 대해서 배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장만화에 대한 논란에 대한 책임 여부는 “만화의 특성상 만화로 개인이 이익과 명성을 가지는 것처럼 책임도 개인이 진다”고 밝혔다.
실제 만화가협회가 창단 된지 36년이 지났지만 문제 작가들에 대해 제재나 주의를 준적은 거의 전무하다. 그 동안 한국 만화에 대한 논란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만화의 개인적 성격으로 만화계 전체를 판단한다는 협회의 행동은 협회 존재 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한국 만화를 고급문화로 승격하고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만화가협회의 말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만화가 개인의 문제를 만화계 공동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작 자신들은 변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인식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오만과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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