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편은지 기자 |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맛집의 음식을 먹으려 뙤약볕에서 한 두 시간은 흔쾌히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됐을 정도로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이 음식이 어떻게 맛있느냐, 왜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말하기가 꽤 곤란해집니다. 대부분은 “그냥 맛있는데?”서부터 “짜고 달아서 맛있다” “짜지 않아서 맛있다” 등으로 표현하겠지요.
 
그렇다면 ‘맛’이라는 감각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요. 가령 소문난 맛집이 대체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데 먹어보려면 직접 가봐야 하고, 웨이팅도 감수해야하니 참 난감합니다. 글만 읽어도 맛이 머릿속에 그려질 순 없는 걸까요.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20여년 간 맛의 표현에 집중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맛을 느끼는 것을 뛰어 넘어 ‘맛 평가사’라는 직종을 국내에 처음 만들고, 미식가를 뛰어넘어 국내 미식가를 양성하고 있는 조기형 지오맛 아카데미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편집자 주>
 
조기형 지오맛 아카데미 대표. 사진=편은지 기자
▲ 조기형 지오맛 아카데미 대표. 사진=편은지 기자

  ◇ “맛은 신이 내린 축복”... ‘어떻게’ 맛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조기형 대표는 국내 최초 맛 평가사이자 이후 자신과 같은 맛 평가사들을 양성하는 지오맛 아카데미, 맛 평가사들로 구성된 지오맛 평가원의 원장이다. 그는 1998년경 인체의 ‘감각’에 대한 관심을 갖고 탐구하던 중, 다도(茶道) 전문가를 만나면서 맛에 연결됐다고 말한다. 맛에 대해 연구한 지 벌써 20년도 더 된 셈이다.
 
맛에 대해 연구하던 그는 맛의 감동과 표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 지오맛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맛 평가사’ 교육과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맛있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감각에서 나오는 반응이 인식으로 이어지고, 인식에서 나오는 감동을 말로써 풀어낸다는 점을 기반으로 했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온 교육과정만 해도 맛 평가사를 비롯해 다도 맛 평가사, 술 맛 평가사, 커피 맛 큐레이터, 청소년을 취한 맛 소믈리에, 문학인을 위한 맛 평가사 등 여러 가지다. 그는 “맛은 신이 인류에게 준 축복이다. 인류발전에 도움이 되는 행복지수를 맛으로 높이고자 사명 의식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가 음식을 먹고 평가하는 체크리스트에는 총 75가지의 항목이 있다. 짠맛, 단맛 등의 일반적인 미각 뿐 아니라 시각, 후각, 촉각, 청각, 온도, 인테리어, 서비스를 각각 세분화해 총 75가지를 체크해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면 ‘씹힘의 질감’ ‘씹힘에서의 강도조절’ ‘음식을 씹을 때 소리의 균형’ ‘먹을 때의 냄새’ ‘삼킬 때의 냄새’ 등 매우 구체적이다. 실제 그는 맛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음식 하나를 먹을 때 최소 3-4시간은 소요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세세한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그의 맛 평가는 확실히 남들과 차이가 있다. 그는 김밥 한 개, 밥 한 숟가락을 먹고도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맛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가 충남 홍성의 쌀로 알려진 ‘순수 미(米)’를 먹고 써낸 평가글의 일부를 보자.
 
“고들하게 지어진 밥알이 또글또글 여기저기 엉겨붙어 찰기를 드러내고, 탱탱한 힘으로 또그르르 미끄러지는데 순수미 씹히는 소리가 즈즉즈즉 들린다. 잔잔한 들근함을 품어내는 맛은 여운으로 오는 세한 담백함을 선물하고, 맛의 경계를 슬쩍 넘어가는데 미풍처럼 깔리는 담백한 구수함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안정을 준다.”
 
음식을 먹고 써낸 표현이라기엔 굉장히 섬세하고 문학적이면서 동시에 생소하기까지 하다. 처음 들어보는 의성어, 의태어인데도 이를 상상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더 놀라운 건, 이 글은 그가 순수미를 먹고 써낸 10페이지에 달하는 평가 중 일부라는 점이다.
 
◇ 맛 평가사, 이틀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맛 평가사’란 정확히 어떤 것일까. 조 대표는 맛 평가사란 새로운 영역이 아닌 미식가들의 영역을 대중화시켜 직업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배울 수 있고, 누구나 미식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가 배출한 맛 평가사는 벌써 400명이 넘는다. 놀라운 건, 직업을 찾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을 비롯해 그가 배출한 맛 평가사 중 다수는 음식을 업으로 하는 요리사라는 점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쉐프도 있다. 조 대표는 “요리사는 맛을 알고있는 만큼 요리를 만든다”며 “그들도 맛에 대해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요리를 보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맛 평가사의 과정은 자격증처럼 1급, 2급, 고급, 마스터 등 단계별로 세분화 돼있으며, 그가 대표로 있는 지오맛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다. 또 연령,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 행복을 찾는 시대, 꼭 필요한 직업
 
그렇다면 맛 평가사 과정을 거친 사람은 미래 직업시장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맛이라는 영역이 너무 주관적인 부분은 아닐까.
 
이에 대해 조 대표는 맛 평가사는 꼭 필요하며 갈수록 더 세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맛 평가사 과정을 거친 사람의 발전 가능성은 앞으로 무궁무진할 것이라 내다봤다.
 
조 대표는 “맛을 평가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성이 반영되기에 보편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식품회사와 먹거리 관련 사업체는 맛을 평가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신제품에 대한 맛 평가는 항상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맛 평가사가 극소수지만, 급료는 일반 직장인의 2~3배를 받고 있다. 맛 평가사는 갈수록 세분화 될 것이고 김치 맛, 물 맛, 차 맛, 쌀 맛, 콩나물 맛, 삼겹살 맛, 된장 맛, 간장 맛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질 것으로 본다”며 “글로벌 수준의 맛 평가내용으로 해외 진출도 가능하고 맛 컨설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맛의 창조를 위해서 맛의 구조와 응용이 반영돼 신메뉴 개발 시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새로운 직업군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이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맛 평가사의 활동은 식당의 매출과 식품의 매출로 이어진다. 고객과 판매자의 신뢰가 높아지기에 건강한 식문화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고급직업으로 정년이 없이 활동할 수 있는 품격의 직업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 맛과 관련한 활동을 늘리려 유튜브를 통한 브랜드도 개설했다. 유튜브 ‘미식가 맛수다’가 바로 그것인데 지오맛 평가원의 맛 평가사들이 음식점을 방문해 맛을 평가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맛을 느끼고, 설명하고, 인증하면서 어떤 식당이나 특정 음식에 대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게 그의 목표다.
 
▲조기형 대표의 유튜브에 지오맛평가원의 '맛수다' 멤버들이 찍은 맛평가 영상이 올라와있다. (사진=유튜브 캡쳐)
▲조기형 대표의 유튜브에 지오맛평가원의 '맛수다' 멤버들이 찍은 맛평가 영상이 올라와있다. (사진=유튜브 캡쳐)
◇ ‘먹방’이 ‘맛방’으로 바뀌면 인생은 더 행복해진다
 
조 대표는 음식을 맛있게 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맛에 집중하는 문화가 생겨날수록 우리 사회가 더 행복하게 변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2-3년 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먹방’의 경우 음식을 많이 먹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적게 먹더라도 제대로 맛을 음미하고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맛을 즐기면 행복한 호르몬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 배불리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맛있게 먹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맛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맛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중용강좌에서 말씀하시길 ‘문명의 핵심’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맛을 즐기는 것과 맛집을 많이 다니는 것은 다르다. 맛집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맛의 인식을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맛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맛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먹방이 맛방으로 바뀐다.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국민의 행복지수가 전체적으로 상승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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