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권,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의지 사라져
“적폐청산은 옛 적폐와 손잡은 모습 확인하고 괴로운 마음”
“불공정과 부당함 느끼지만 아이에게만은 희망 얘기”
“공정위 가습기살균제 처리 과정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너무 많아”

▲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투데이코리아=오혁진 기자 |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피해자는 늘고 있다. 가해 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은 10명이 넘는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하면서 단 두 명인 공판 담당 검사들과 전쟁을 치르며 가벼운 형을 선고받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의지가 사라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투데이코리아는 2회에 걸쳐 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현 상황을 들어봤다. 

Q. 문재인 정부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의지를 밝힌지 3년이 지났다. 현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피해자 입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기대가 여느 정권보다 높았다. 국민들이 적폐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할 정도로 이전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직접 목격하다 보니 적폐청산에 대한 강한 요구가 이어졌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문재인 정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촛불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지지를 얻어 탄생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정위는 차마 공정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질 정도로 불공정했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그런 기대심리를 이용해 우롱했다는 불쾌함과 또 당시 공정위가 받고 있던 비난을 피해가는 도구로 한 번 더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적폐청산의 명령을 받아 만들어진 정부가 적폐청산은 커녕 적폐와 손잡은 모습을 재차 확인하게 되니 절망스럽고 괴로운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Q. 유족이나 피해자들의 의견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제대로 반영이 됐는가?...어떤 것들이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보시는지?
 
A.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진상규명과 피해 구제,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출범을 준비하던 기간부터 출범하던 날까지 그동안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을 정리해 전달하고 조사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 조사신고도 해뒀다. 시작부터 여러 우려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조위의 진상규명이나 피해구제, 재발방지 등의 기대를 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그런 우려가 예감되더라도 요구하고 목소리 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계속 반복하게 됐다.
 
문제는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요구하는 방향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통을 요구했지만 소통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조위가 전원위원회 회의록을 거의 비공개로 전환하다보니 특조위의 조사 방향이나 피해자들이 보충해야 할 의견이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문제가 끝까지 개선되지 못했다. 또 그동안 담당 부처인 환경부와의 소통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특조위에서도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검찰 고발과 특검을 요구했고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신고인으로서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을 근거로 헌법재판소에 특조위의 의견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하여 의견서가 접수된 것 이외에는 법적인 고발조치 등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조위가 공격적인 자세로 문제가 되는 공무원들이나 기업들에 대한 조치가 서둘러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고 보고 있고 공소시효 도과 등이 가장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고발조치를 요구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 등은 특조위가 피해자들만큼의 절박함이 없고 그들 역시 이 정권의 공무원이라는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다.
 
▲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Q.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기업인 애경과 SK케미칼에 대한 환경부의 책임도 있다는 비판이 상당하다.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오셨는데,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A. 각 시기 별로 담당해오거나 관련이 된 정부 부처들의 책임이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초기 담당 부처인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흡입독성실험에서 보완해야 할 문제점이 존재했음에도 당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이유로 미완의 보고서를 근거로 발표했고 피해 기준까지 만들게 되면서 옥시나 세퓨 성분인 PHMG, PGH의 흡입독성실험에서 확인된 실험쥐의 폐섬유화 소견을 강조해 발표하게 되었고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에 들어있는 CMIT/MIT성분에서 폐섬유화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질본은 CMIT/MIT 성분에서 폐섬유화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고서의 농도 등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고 추가적인 실험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기록된 보고서였음에도 PHMG, PGH의 주된 결과의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마치 CMIT/MIT는 문제가 없는 제품인 것으로 오인하도록 하게 만들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공급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아야 했던 SK케미칼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급되지 않도록 보안을 요구하는 문건을 SK케미칼에 전달했다. 질본은 2011년 8월 31일 대국민 발표를 하기 몇 달 전부터 기업들을 수차례 불러 산모와 아기들의 원인미상 폐손상 피해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것을 공유하기도 했다.
 
질본에서 환경부로 담당 부처가 이관되고 질본이 마저 하지 못한 추가 실험과 연구가 이어졌어야 했다. 환경부는 피해자들에게 ‘실험과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다려라’, ‘피해자들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자료들을 근거로 피해자들을 판정한 것이다’, ‘폐손상위원회의 위원들을 비공개 하면서 무조건 신뢰하고 믿을만한 사람들이다’ 이런 말들 뿐이었다. 확인 결과 환경부는 2014년 질본으로부터 이관 받으면서 실험과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되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나 제품들을 관리하지 않았고 진행 중인 연구도 실험도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가장 기초적인 피해자들의 빅데이터 등도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판정을 신뢰하기 힘들었다.
 
또 공정위에 2016년 SK케미칼과 애경 등을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신고하고 처분을 내려달라며 그 당시까지 계속되고 현재도 검색하면 확인되는 광고 등 증거를 다수 제출했지만 끝내 공소시효와 처분시효를 도과시키며 기업들을 영원히 법적 처벌에서 자유롭도록 해줬다. 당시 공정위의 거짓말은 계속되었고 시효가 도과된 사실을 알면서도 피해자들에게 2021년 5월까지 언제든 처분이 가능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들의 주장이 정말 사실이라면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기업들을 처벌하기 위해 공소시효는 도과되어 법적처벌을 못한다지만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내부적으로 그런 면죄부를 준 이후에도 아무런 조사 행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상조 공정위가 들어서면서 기업들은 총 3번의 공정위 조사에서 그제야 처음 현장조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 왼쪽부터 김동수 정재찬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 왼쪽부터 김동수 정재찬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2016년 공정위 신고는 공익신고에도 해당되는 고발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현재까지도 공익신고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마치 그러한 공익신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응하고 있다. 2017년 당시 김상조 위원장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며 다시 재처분 내릴 수 있다고 공언하고 포렌식 조사 등 모든 조사를 총동원해하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지만 하지 않았다.
 
Q.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공식화’ 된지 9년이 지났다. 정치권은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 발의에 힘써왔다는 평가도 있다. 예시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과 ‘사회적 참사의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등이 있는데 이 같은 특별법들도 사실상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A. 사실 피해자들은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란 것이 통과되기 힘든 과거를 겪어왔고 그러다 2016년 특별법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다양한 요구가 환노위, 법사위를 거치면서 대부분 삭제되고 말 그대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라는 껍데기만 통과가 된 셈이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특별법이 존재라도 해야 개정안을 요구하고 계속해서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통과를 시켜야만 했다. 그 당시에도 그런 껍데기같은 특별법을 전면폐지해야 한다는 등 피해자 내부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징벌제 등 중요한 내용은 삭제가 된 특별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고 당연한 의견이기도 했다.
 
법안을 발의하는 것부터 그 내용을 만드는 것,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자들이 국회를 찾아가고 의원들을 찾아가는 일들을 매일같이 하면서 힘들었고 여·야 서로 탓하는 정치판에서 동의를 얻어 통과시키는 것이 피 말리는 과정이기에 틀이라도 만들어 놔야 한다는 목적으로 2016년 통과를 시키는데 애썼다.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피해자들이 된 많은 국민들을 피해로부터 구제하고 일상생활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특별법의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요구가 중심에 있지 않고 제3자의 목소리와 의견이 중심이 되어 매번 피해자들의 의견이 무시된다. 제발 특별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반영되었는지를 항상 중점을 두고 정부 부처와 국회에서 검토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Q.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공식포털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1561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수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는데 어떤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보는가?
 
A. 정부는 피해 국민들의 범위를 충분히 짐작하고 피해자들을 찾아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피해자임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의료기관의 5년 보관의무 기간이 도과해 의료기록 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로 피해자 신고를 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도 피해자들이 의료기록을 5년만 보관하도록 하는 기준을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에게는 예외를 두거나 오래된 의료기록을 관리하고 있는 의료기관에게 제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둬서라도 의료기록 확보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특히 심평원과 복지부 등이 확보하고 관리하고 있는 국민들의 의료기록과 데이터들을 분석해 가습기살균제 피해 데이터를 다양한 내용으로 만들어 반영해야 한다.
 
기업들에게 기금을 조성하도록 한 것 역시 보완해 주기적으로 기금 형성을 통해 기금 고갈이 되지 않도록 관리에 신경 쓰도록 하고 정부는 피해자들 현실에 맞는 눈높이로 전신 피해에 대한 모니터링과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적극적,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피해자를 찾는 것만큼 못지않게 신고 후의 피해 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문제가 먼저 해결된다면 의료기록을 확보하지 못해 신고를 포기해왔던 국민들이 먼저 피해 신고에 나서면 피해자 찾기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A.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라는 이름을 달고 오랫동안 싸우면서 최근에 슬픈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질문이 “지금 하시는 일이 뭔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우연히 이 질문을 받았는데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가장 먼저 생각난 대답이 “피해자”라는 단어였다. 아프지만 그저 아이를 돌보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과거에도 그 마음으로 샀던 가습기살균제가 평생 씻기지 않을 죄책감의 낙인을 찍어 버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나라가 이 정도 일 줄 몰랐다고 말한다. 나 역시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었고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그게 될 것 같은 확신도 들었다. 그게 내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죽어라 매달렸다.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 원인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너무나 간단한 그 공식들이 이 나라에서는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반복해 깨닫고 있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건강을 잃어 삶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아이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부모이기에 아이에게 다양한 희망을 얘기한다. 정작 난 이 나라에서 절망만 느끼고 불공정과 부당함을 느끼지만 엄마이기에 아이에겐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 사실, 피해자가 된 삶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에게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싸움 그 너머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앞으로 해주고 싶다. 피해자로서 얼마나 잘 버티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치료하고 살 수 있는지를, 피해자는 앞으로 겪고 있고 겪어야 하는 전신의 피해를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 사진제공=이은영 너나우리 대표
우리 피해자들이 그렇게 이 싸움 너머의 이야기들, 잘 버티고 살아가는 이야기들 하며 살 수 있도록 제발 정부와 국회가 진정성 있게 피해자들의 목소리, 제3자가 아닌 당사자들의 목소리 직접 반영하기 위해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고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 대응에 나서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2017년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께서 피해자들 끝까지 책임지시겠다 했던 약속, 그 어떤 약속보다 무거운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쳤으면 한다. 1561명의 국민이 사망했다. 그 사망한 국민들의 가족도 상당하다. 1561명의 사망자의 무게는 그래서 어마어마한 것이다.
 
7000여 명에 이르는 피해신고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 그럼에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 많은 국민들, 대통령님이 하신 그 약속의 무게는 많은 국민들의 생명의 무게다. 여전히 목숨을 부여잡고 가족을 위해 살아내는 힘겨운 피해자들의 그 마음, 어느 것 하나 가벼울 것이 없는 그런 무게의 책임이고 약속이었다. 
 
많은 분들이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억해주시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해결되거나 잊혀진 사건이 됐다. 지금은 국민들이 화학물질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피해자들을 통해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가해자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힘든 피해 앞에서 외롭게 버티고 목숨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피해자들과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잊지 말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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