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따라잡기 벅찬 '대책'...2021 숙제로 남아
전 국민 충격 빠뜨린 'N번방'...사회 전반 성인지 감수성 향상
분야 가리지 않는 '권력형 성범죄'...기관 내 대책 원활히 이뤄져야
조두순 출소길 '엉망진창'...더이상 피해자 없어야

투데이코리아=한지은 기자 |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두려움 탓일까, 올 한 해는 유독 숨겨왔던 이면이 드러나는 사건이 많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사회 분야의 이슈를 볼 때마다 충격적인 소식이 줄을 이었다. 그 중 2020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뉴스가 있었다. 바로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N번방)’이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미국에 옥외 광고가 걸리기도 했고 ‘권력형 성범죄’의 민낯이 다시 드러나기도 했다. 또 마지막 달인 12월엔 조두순이 출소하며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이 재차 논의됐다.
 
2020년은 성범죄와 관련한 이슈들이 지속적으로 공론화되며 각종 담론이 제기된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한 해 동안 우리 사회가 성범죄 이슈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그런데도 존재하는 한계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섰다. 사진제공=뉴시스
▲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섰다. 사진제공=뉴시스
◇ '디지털 성범죄' 수면 위로...전 국민 충격빠뜨린 'N번방'
 
N번방 사건은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신저 상에서 아동 청소년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게 하는 등 각종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N번방’의 실상을 알린 최초 보도자였다. 이들의 보도를 통해 텔레그램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고 그 사실은 모든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특정하는 것조차 쉽지않다. 하지만 ‘N번방’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한 사람이 지목됐다. 바로 ‘박사’ 조주빈이었다. 조주빈은 지난 3월 25일 성폭력 범죄자 최초로 포토라인에 섰다.
 
하지만 조주빈의 태도는 당당했다. 조주빈은 “손석희 (JTBC) 사장님,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 시장님 등에게 사죄드린다”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조주빈의 태도 탓이었을까 N번방 가해자들에게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이 이어졌다.
 
그 결과 지난 11월 조주빈은 1심 재판에서 징역 40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이현우 부장판사)는 조주빈 외 공범 5명의 재판을 열고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결 중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범죄집단’이 인정됐단 것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중 범죄집단이 인정된 첫 번째 사례였다.
 
재판부는 “법원의 채택 증거에 따르면 박사방 조직은 텔레그램 내부에 개설된 유료 구성원들 구성이 명확하다. 또 박사방 조직은 조주빈과 공범들이 아동 청소년을 협박해 성착취물 제작, 배포 등을 저질렀다. 구성원들은 이를 인식하고도 범죄 목적만으로 구성해 가담한 조직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조주빈의 ‘징역 40년’ 또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단 증거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를 운영했던 손정우는 지난 2018년 구속기소 된 후 ‘음란물 제작·유포’혐으로 1년 6개월의 형량을 받았다. 손정우의 범죄가 주목받은 것도 N번방이 알려진 이후였다.
 
1,2심 재판부에 따르면 손씨는 ‘본인의 자백여부,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성장 배경,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보호와 양육의 부재, 혼인 신고서를 접수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초범’ 등의 이유로 감형됐다.
 
사실 N번방의 가해자들도 ‘양형팁’을 공유한다며 논란이 된 사례가 있었다. N번방 이전의 법원은 성범죄에 대해 기계적인 감형을 해왔으며 사회 구성원 또한 성범죄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다.
 
한편 조주빈 외 공범들에게도 중형이 내려졌다. ‘태평양’ 이모씨(16)는 징역 장기 10년·단기 5년을 선고받았다. 사회복무요원 강모씨(24)는 징역 13년, 거제시청 소속 공무원이었던 천모씨(29)는 징역 15년, ‘오뎅’ 장모씨(41)는 징역 7년, ‘블루99’ 임모씨(34)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변호를 맡은 조은호 변호사는 "수사가 시작되고, 재판이 진행되기까지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디지털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이 일상이 잡았고, 사회적 경각심도 높아졌다"라며 "가해자들의 폭력을 버텨내고 생존해 범죄를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라고 언급했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기록보관소(아카이브) 설치 반대 및 성추행 은폐 가담자 수사 요청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기록보관소(아카이브) 설치 반대 및 성추행 은폐 가담자 수사 요청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피해자 움츠러 들 수 밖에"...분야 가리지 않는 권력형 성범죄
 
아동 청소년들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로 국민들이 한 차례 충격을 받은 이후 또 다른 유형의 성범죄가 논란이 됐다. 바로 ‘권력형 성범죄’다.
 
권력형 성범죄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5년 경의 일이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고발이 이어졌고 이 물결은 다른 분야로 확대돼 ‘미투(#MeToo)’ 운동으로 이어졌다.
 
약 5년째 사회적 이슈에서 빼놓을 수 없던 ‘권력형 성범죄’는 2020년에도 휘몰아쳤다. 지난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실종됐다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그 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서를 꾸준히 성희롱해왔다는 주장은 사람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박원순 시장의 전 비서 A씨는 박원순 시장의 전 비서 A씨는 지난 7월 서울지방경찰청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고소장을 접수하고 변호인과 함께 조사받았다.

피해자 A씨의 고소장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2016년 이후 집무실에서 A씨를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했다. A씨는 서울시청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원순 시장의 조문과 피해자의 호소가 겹치며 혼란이 일었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장장이 진행되며 조문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피해자를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주장도 존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서울시의 5일간의 대대적인 서울특별시장(葬), 장례위원 모집, 업적을 기리는 장, 시민조문소 설치를 만류하고 반대한다”라며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사회가 이것을 들어야 하는 책임을 사라지게 하는 흐름에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민주당과 서울시 측에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부르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7월 15일 공식 사과를 하며 “피해 호소인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성명서에서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진상조사를 약속한 서울시 또한 ‘피해 호소 직원’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끊임없이 반복됐으며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하며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기도 한층 어려워졌고 “이미 사망했는데 들춰내야하냐”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업적을 기리며 피해자의 호소를 축소시키는 주장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최근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고 해당 편지에 적혀있던 피해자의 실명까지도 공개됐다.

김민웅 경희대 교수(미래문명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 비서의 손편지'란 제목의 글과 함께 세 편의 편지를 게재하며 “자, 어떻게 읽히십니까.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주장한 여성이 쓴 편지입니다”라고 했다. 또 “여당의 장관 후보자들은 박 전 시장 관련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했다. 시민 여러분들의 판단을 기대해본다”라고 밝혔다.
 
이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편지들은 개인적으로 쓴 편지가 아니다. 업무로 시장 생일마다 온 비서실 직원들이 다같이 쓰는 ‘시장님 사랑해요’ 편지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장을 기분좋게 하는 업무를 맡은 피해자가 업무의 일환으로 쓴 편지가 권력형 성범죄를 부인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여성 보좌진을 성추행한 사실을 시인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또한 각종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성범죄 사실이 밝혀졌지만 솜방망이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인식은 상향됐을지 몰라도 각종 혼란 속에서 2차 가해 등이 무분별하게 일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이를 대처할 방법은 우리 사회에 자리잡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 시스템 내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규정이 잘 작동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사실 (공직사회나 직장 등에서) 징계에 관해선 웬만큼 규정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작동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조직에 성폭력 피해를 알렸을 때 사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관행이 남아 있다. 이런 관행이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에게 '본인의 행위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형성하게 만든다"라고 강조했다.
 
▲ 조두순이 출소해 거주지 앞에 도착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조두순이 출소해 거주지 앞에 도착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주취감경', '솜방망이 처벌' 상기...조두순 출소
 
12월 12일 조두순이 12년의 복역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조두순의 출소는 우리 사회가 성범죄자에게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지 상기시켰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한 교회 입주 상가건물 화장실에서 8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조두순은 당시 술에 취해있었다는 점과 심신 미약으로 감경 처분을 받았다.
 
조두순 출소 당시 교도소 앞은 항의를 하러 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조두순 거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조두순이 탄 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길에 눕기도 했다. 몇몇 유튜버들은 조두순의 집까지 찾아가며 주변 상황을 전했다.
 
외신 또한 조두순의 출소에 주목했다. NYT는 "한국에서 조두순이라는 이름은 '성범죄자 솜방망이 처벌'과 동의어가 됐다"라며 "한국 사법부는 화이트칼라 범죄자와 성범죄자를 처벌할 때 관대하다는 의혹을 오랫동안 받아왔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검찰이 더 강한 처벌을 위해 항소할 수 있었으나 이를 포기했다"라고 밝혔다.
 
조두순의 출소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성범죄에 대한 기계적인 감형 사실을 다시 일깨웠다. 조두순의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함께 시민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전자발찌 착용 기한도 최대 30년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음주나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판사가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율과 재범률은 증가하고 있어 숙제로 남았다. 또한 법은 변했을지라도 조두순은 이미 사회로 나왔기에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출소이후 관리하는 방법 또한 해결이 시급하다.
 
이뿐만 아니라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해결되지 않았다. 각종 언론은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조두순의 출소일이 가까워지며 피해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피해자의 집과 조두순이 출소 후 머물게 될 집이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밝힌 보도까지 등장했다.
 
이외에도 각종 유튜버 등이 조두순의 집 앞까지 찾아가며 생중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콘텐츠를 제작하며 난동을 부리기도 해 인근 주민들은 피해를 호소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정말 성범죄에 분노해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게 맞느냐”, “피해자는 조두순이 콘텐츠화되는 것으로도 힘들 것”, “그냥 본인이 관심받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20년은 성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담론이 제기되며 성인지 감수성이 크게 성장한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성인지 감수성의 향상에 비해 법적 대책 마련 속도는 더뎠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박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성범죄에서 피해자다움이 요구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라며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미성년 성착취 유인행위, 그루밍을 통한 미성년 성추행, 스토킹과 같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직도 미약한 점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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