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이모, 내 쬐끔만 나아지면 금새 부를께.. 꼭 와야돼?”
“알았어, 내 걱정 말고 열심히 혀”

삼겹살집 가게, 60대 중반의 할머니(이모, 주방 아줌마)와 50대의 가게 여주인이 마주 앉아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버티다 버티다 못견디고 10년 넘게 함께한 이모와 헤어지는 날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자매 같은 이 두 여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얼싸안고 울었다.

어깨 너머로 대화를 듣던 손님들도 너 나 없이 손수건 꺼내 눈물 닦는다.
 
가게 임대료 내기조차 힘들어지자 홀 서빙 아줌마 내보낸 지 한달 만에 친언니 같은 이모를 내보내는 여주인은 가슴이 찢어진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이모네 사정을 잘 알기에 “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어 이런 일을 해야하나” 가슴 아프고 한스럽다. <필자 단골 삼겹살집에서 본 대로다>
 
얼싸안고 대성통곡하는 두 아줌마
 
10일 오후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서 충무로 쪽으로 70여m 스카이파크 호텔 앞까지 걸었다. 어깨 스치며 걸어야 하는 명동 오후에 사람 발길이 뜸하다. 양쪽에 들어선 가게 중 48군데가 ‘임시 휴업’ ‘임대 문의’ 푯말로 빼곡했다. 거의 한 집 걸러 한 집이 휴폐업이다.
 
명동 예술극장 건너에서 역시 충무로 방향으로 CGV 까지 골목도 22곳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필자가 헤아린 휴폐업 가게 숫자는 1층만이다. 2층 3층 합하면 문 닫은 가게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전층 임대’ 안내문이 붙은 곳도 부지기수다. < ‘한집 걸러 한집 폐업’이란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고 이날 필자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
 
명동 뿐이겠는가. 강남역 부근 골목도 가게 4개중 1개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언론의 취재를 보면 부산 남포동의 가게 공실률이 27.8%다. 창원 번화가 상남동도 상가는 파리 날린다. 여름 휴가 한철 장사인 강릉 주문진 수산물 시장도 개점휴업이다.
 
한집 걸러 한집 휴폐업

10시에 문을 닫아야 하고 그나마 6시 이후엔 2사람만 입장 가능한 당구장, 부부 함께 운영하다 남편은 막일에 나섰고 부인 혼자 당구장을 맡았다.

하지만 가게 월세도 못낸다. 하다못해 여사장은 건물주에게 통사정, 건물 청소일을 맡았다. 월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 이로 인해 한 아줌마는 일터를 잃는다. 그간 청소일 하던 사람은 갈 곳이 없어졌다.
 
먹자골목 언저리에서 술자리가 끝난 사람들의 차를 대리운전 해주던 아저씨들도 삶이 막막해졌다. 10시 영업 제한으로 술꾼이 줄어 일감이 없다. 전화 오길 기다리며 하릴없이 핸드폰 들고 술집 주변을 서성댈 뿐이다.
 
어렵게 장만한 가게 월세로 생활비 조달하던 임대인은 전화 받기가 겁난다. 임대료 깎아준 지가 얼마 안되는데 가게 그만두겠다고 할까 봐 조바심이다. 지금 하는 사람이 나가면 세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극심한 불황이 2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수많은 가게 입주자들은 이미 임대 보증금을 다 까먹은 상태다. 못견딘 임차인이 속절없이 폐업하고 돌어가도 호소할 곳이 없다.
 
‘건물주가 조물주보다 위’라는 말은 옛말이다. 임차인 연락 올까 봐 노심초사다. 건물주가 갑(甲)인지 을(乙)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은행빚 안고 건물 장만한 건물주 고민도 크다.
 
우리네 서민 실태는 이렇다. 대통령은, 장관은, 국회의원은, 대통령 되겠다고 설치는 정치인들은 이런 실태를 아는가 모르는가.
 
대통령 되겠다면 현장부터 살펴라

밑으로부터 85% 계층의 국민들에게 수십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한다. 돈 준다는데 싫은 사람 있겠는가.

아니다. 꼭 받아야 할 사람에게 한 푼이라도 더 줘야 한다. 코로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더 줘야 옳다.

별 피해 입지도 않은 월급쟁이에게 왜 재난지원금을 줘야하나. 지난번 돈 푼뒤 나돈 얘기들을 정치인들은 아는지. “그 돈으로 보리굴비 먹어봤다” “한우 고기 파티해봤다”
 
지난 총선 때 마구잡이 돈 풀어 재미 본 여당, 180석 의석 싹쓸이 한 뒤 한다는게 국민 아픈곳 어루만져 주기는 커녕 자기들 정권 재창출에만 혈안이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지도자는 먼저 실상을 알아야 한다.

신문기자들이 발로 뛰어 전하는 서민 삶의 현장을 가보기만 해도 된다. 돈 풀어 표 얻을 궁리만 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훗날 역사의 죄인으로 소환될 것이다.
 
그도 저도 안된다면 국민들이 나서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성 싶다.

“돈 주면 받고, 표는 제대로 찍자”는 수십년 전 김대중의 말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집권에만 눈이 먼 지도자에게 표 줬다간 우리도 파산한 남미 국가 꼴 난다는 걸 국민들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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