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로의 대전환 추세 속 국내 車 산업 대한 지원 방안 사실상 부재
부품사 미래차 준비 미흡에 실적 부진 현실화…일부 부품업체 도산 속출
“부품업체 위기는 車 산업 전체 위기…韓 경쟁력 급속도로 약화할 수도”

▲ 야적장에서 선적 대기 중인 신차들. 사진=뉴시스
▲ 야적장에서 선적 대기 중인 신차들.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 대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각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차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 계획과 로드맵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된 지원 방안이 여지껏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래차 전환에 미진하게 대응하는 동안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친환경차용 부품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미래차 전환에 늦은 부품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핵심인 부품업체가 생존을 위협받으면서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미래차 전환 늦었나” 올 3분기 중소 부품업체 영업익 98.8% 급감

2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영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3분기 중견 부품업체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3%나 줄었다. 같은 기간 중소 부품업체의 영업이익은 무려 98.8% 급감했다.

또 올 3분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한 중소 부품업체의 영업이익은 1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부품업체들의 실적이 줄어들고 있는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 지목된다. 또 전 세계를 휩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란으로 극심한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서 부품업체들의 납품 물량이 급감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는 이뿐만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연기관차가 퇴출되고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생산이 확대되고 있는 것 또한 부품업체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위기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부품인 액슬을 생산하는 한 부품업체는 최근 해당 부품의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 액슬은 타이어와 차체를 연결해 진동 및 충격을 흡수하는 부품이다. 2012년 해당 부품사의 액슬 매출은 557억원에 달했으나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매출은 50억원에 그쳤다.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공법으로 내연기관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한 업체는 4년 만에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 해당 부품사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370억원으로 2017년 660억원과 비교해 43%나 급감했다.

실적 부진에 허덕이다 못해 도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업체에 브레이크 부품(캘리퍼)을 공급하는 업체인 HM금속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현대차 아이오닉5와 제네시스 G80 등 주요 생산 라인은 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루프랙 부품업체인 진원 역시 법정 관리를 밟고 있다. 진원이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현대차는 일시적으로 생산 차질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국내 부품업체 3~4곳이 법원에 법정 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 ▲ 광주글로벌모터스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 ▲ 광주글로벌모터스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부품업체 80%, 자금 부족 탓 미래차 전환 제대로 대응 못해”

미래차 시대가 성큼 다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친환경차로의 전환에 제때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1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올해 9~10월 완성차·자동차 부품업체 300개사, 자동차 업계 종사자 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동차 업계 미래차 전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부품업체들의 미래차 준비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응답 업체의 56.3%는 미래차 분야에 전혀 진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3.7%는 미래차 사업에 진출은 했으나 해당 분야에서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상 국내 완성차·자동차 부품업체의 80% 정도가 미래차 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차 분야 진출 후 관련 제품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답한 곳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중 수익이 발생하기까지 3년 이상이 소요됐다는 응답은 절반 이상(57.3%)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래차 분야에 진출했더라도 수익 창출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차 R&D 투자 과정에서 애로 사항은 ‘자금 부족’이 47.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전문 인력 부족 32.1% △원천 기술 부족 13.0% △R&D 장비 부족 5.3% 등이었다. 설비 투자 장애 요인으로는 △자금 부족 77.9% △입지 규제 등 각종 규제 9.9% △미래 불확실성 9.2% 순이었다.

국내 완성차·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미래차 전환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수익성 악화에 따른 자금 부족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코로나 여파로 인한 경영 여건 악화로 원자재 조달, 자금 확보 등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기와도 직면했다”며 “업계는 미래차 전환을 위한 R&D와 시설 투자를 확대해야 하나 자금·인력·R&D 등 자원 확보조차 여의치 않은 상태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대략 3만개이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개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위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부품업체 8966개 중 전기모터 등 미래차용 부품 생산이 가능한 업체는 총 210곳 정도로 전체의 2.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간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R&D 비용을 투자하는 부품업체는 국내 300개 미만에 그치고, 이 금액을 3년 연속 투입하는 업체는 100곳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는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이 무너지면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되는 만큼 이들 업체가 조속히 미래차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코로나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이 악화되는 와중에 미래차 전환이라는 대전환기까지 겹쳐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생산 유연성, 규제 개선, 정부 지원 등을 통해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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