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박지르지 말고 국민 요구에 순응해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문재인 정부가 뒤늦게 공급 확대로 정책을 선회하면서 집값 오름세가 점차 꺾이는 모습이다. 그동안 국민은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과 이념에 치우친 사이비 전문가들의 주장이 불러온 집값 폭등을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부동산이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라 굵직굵직한 공약들이 여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연달아 터져 나온다. 주택공급 확대를 경쟁적으로 제시하다 보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11만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250만호 공급을 공약하는 등 숫자 불리기로 내달렸다.
 
정부가 세금을 중과, 지나치게 시장을 억눌러왔다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해 부담 경감을 다짐하는 비슷비슷한 공약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여야에서 쏟아졌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일정 기간 유예 또는 배제하고 종합부동산세를 고치겠다는 다급한 약속도 나왔다. 급격한 세금 증가와 건강보험료 등 부담금 상승을 초래한 공시가격 산정에 대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의힘은 세제개편 차원에서 종부세 경감에 상당한 비중을 두겠다고 했다.
 
최근 집값 변화는 공급 확대 방안과 금리 인상이 겹쳐 겨우 잡힌 단계다. 집값을 안정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주거환경을 보장하려면 선거를 앞두고 눈길을 끌기 위한 구호성 대책이 아니라 국민의 합리적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어설픈 정책이나 이념에 치우친 정치인과 관료들의 억지 논리를 근원부터 배격할 필요가 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주택 및 주거환경 정책을 검증받지 않은 소수 의견이 좌우해서는 안 된다. 문 정권 일각에서 거론된 토지국유화 발언이나 양도세 100% 부과 주장들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 실험을 벌일 게 아니라 최소한 안정된 삶의 기반을 바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정부가 자세를 낮춰야 한다.
 
국민의 주거 안정 요구는 크게 보아 무주택자를 위한 충분한 공급과 지원, 그리고 자녀 성장과 함께 나타나는 확대 이전 수요로 압축할 수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무주택자를 위한 공급 확대에 두고 이를 위한 택지 확보와 교통 등 편의시설 및 교육 여건 조성에 공공과 민간부문이 협력해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단견에 빠져 세금 때리고 금융 행정 등 규제를 강화하는 수요 억제 대책은 오히려 집값을 자극할 뿐이다. 현 정부의 실패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재건축·재개발은 기존 주택의 불량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면서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권장해야 할 시책이다. 단기적으로 대상 지역이나 인근 단지의 집값이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겠지만 길게 보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
 
시장 휘둘러 세금 더 뜯겠다는 발상 없어야
 
자녀 성장과 가계 여건에 따라 집을 늘려가기를 바라는 요구는 당연한 일이다. 소형 주택에서 시작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좀 더 큰 집으로, 또는 교육 여건이 좋고 깔끔한 집으로 이사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주거 환경 및 교육 여건이 나은 곳을 바라는 수요를 투기로 몰아가는 정책은 편가르기에 의존해 불만을 잠재우려는 단견이다. 소득과 재산이 안정된 중산층의 증가는 자본주의 민주사회를 발전시키는 허리 역할을 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균일화한 소형 주택만 권장할 게 아니라 중산층 재산축적에 도움이 되는 공급도 배려해야 한다.
 
집 없는 가구에 기회를 부여하고 이사 수요에 맞춰 공급을 원활하게 늘리려면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집을 많이 지을 수 있도록 경쟁체제를 유도하되 무주택자를 위한 중장기 금융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대출을 조이는 억제 대책이 아니라 생애 첫 주택을 담보로 장기 저리융자를 제공하는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 1주택에 대한 재산세와 종부세를 대폭 완화하는 한편 양도세까지 단순화해 무거운 세 부담을 줄이는 대대적인 세제개편이 절실하다. 이념 성향이 강한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공시가격의 급격한 현실화 요구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크다. 공시가격을 시세에 접근시켜 현실화의 비율을 높이자는 발상보다 토지와 상가, 공동주택, 단독주택 등 현실화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현실화율 제고가 무슨 지상과제도 아닌데 세금과 부담금 증가를 가져올 공시가격을 너무 가파르게 인상하는 조치는 피해야 한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중과도 재고해야 한다. 자금을 마구 끌어모아 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집, 차익을 노리는 투기 행위는 엄단이 마땅하다. 그러나 적정 수준의 가계 자금 유입은 주택공급 측면에서 탄력을 높여주고 전세 월세 등 임대 물건을 충당해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추가 투자가 있어야 주택건설사들이 꾸준하게 건설에 나서 공급이 이어지고 여유 주택이 있어야 임대시장에 물량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순환 과정이다. 투기로 부작용을 일으킬 정도가 아니라면 개별 가구 수준의 투자는 집값 안정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다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을 가르치려 달려들 게 아니라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순응하는 방향이기를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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