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김찬주 기자 | 세계에서 유래 없이 빠르게 경제 강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 ‘기업 규제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규제법안은 전 정권의 3배에 달한다. 이에 재계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고, 노동계는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 평가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뉴시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뉴시스.
9일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1825일 동안 20대·21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 규제 법안으로 분류된 법안은 총 4109건이다.
 
총 법안 건수를 주말·휴일을 모두 포함해 일수로 나누면 하루에만 규제 법안이 약 2.3건 발의된 셈이다. 앞선 박근혜정부 시절 발의된 규제 법안은 1313건이었다. 이는 문 정부보다 3.1배 낮은 수치다.
 
21대 국회가 내놓은 규제법안도 상당하다. 지난해 4월15일 제 21대 총선 이후 이날까지 666일 동안 1499건의 규제 법안이 쏟아졌다. 하루 약 2.3건의 새로운 규제 법안이 발의된 셈이다. 문 정부 5년과 21대 국회 2년 간 발의된 일일 규제 법안 평균이 거의 같다.
 
앞서 입법, 시행된 규제 법안 중 최근의 화두는 ‘중대재해법’이다. 지난달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적용 대상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으로 사고 발생 시 고용노동부는 시공사나 사업주 등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조치 준수 의무를 지켰는지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 2월3일 오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2월3일 오후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경찰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발생한 경기 양주시 채석장 매몰 사망사고(삼표산업)와 경기 성남시 판교 신축 공사장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근로자 2명이 추락해 사망한 사고(요진건설산업)가 각각 중대재해법 수사대상 1호, 2호에 속한다.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가 발생한 공사 현장은 공사금액 490억원 규모다. 숨진 근로자 2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중대재해법은 하청의 사고도 원청에 책임을 묻는다. 이 때문에 시공사인 요진건설산업도 중대재해법 적용 및 수사 대상에 해당한다. 다만, 고용부에 따르면 요진건설산업에서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사망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대재해법을 바라보는 재계와 노동계의 시각은 다르다. 기업은 혹여 자신의 기업이 ‘시범조’가 되진 않을지 불안한 상태고, 노동계는 단호한 처벌을 통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건물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건설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중대재해법 처벌 수위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적용될지가 최대 관심사”라며 “현재 임원진들도 회의를 자주 여는 등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데에 모든 기업이 동의하지만, 현재 기업 규제 법안들은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결과만 놓고 더 강한 규제, 더 강한 처벌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사회적인 여론을 의식한 측면에서 파생된 임시방편적인 수단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발생한 중대재해법 수사대상 1호, 2호 기업의 사례 이후 다른 기업들도 경영에 있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라며 “나아가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거나 기업이 영업정지를 당해 회사 운영이 중단되면, 결국 회사 직원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반면,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실장은 “중대재해법 시행이 산업 현장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볼 수 없지만, 안전관리 미흡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분위기는 잡았다고 본다”며 “이후부터는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의 하한선을 없애고 일하는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관련법들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 실장은 근로 현장의 안전과 기업 경영 및 경제 현상에 미치는 영향은 별개로 평가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최근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참사 때문에 현산의 주가가 떨어졌지만, 그 원인이 중대재해법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중대재해법은 법대로, 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윤리와 안전은 별개로 나눠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 교수는 “현 정부와 21대 국회 들어 규제 법안이 과도하게 쏟아지고는 있지만, 중대재해법 등의 시행 이후 앞으로 산업 현장에 어떤 긍·부정적 변화가 나타날 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며 “모든 규제 법안을 발의하기 전 항상 예방과 상생, 서로 윈윈(Win Win)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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