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인텔, TSMC 등 해외 반도체 업체들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다가오는 미래차 시대에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후발 주자인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점차 투자를 늘리는 모양새다.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여기에 정부 또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지원 사격에 나섰다.
 
▲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삼성, 美 신규 파운드리 공장에 20조원 투자…SK, AI·자율주행 반도체 기초 투자 확대
 
친환경차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차세대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해 450억달러(약 54조1125억원)에서 연평균 7%씩 성장해 2026년께 676억달러(약 81조2552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인텔, TSMC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사업과 다소 동떨어져 있던 업체들도 해당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그래픽 반도체 분야의 대표 업체 엔비디아는 영국 완성차 업체 재규어랜드로버와 자율주행차 전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에 2025년부터 엔비디아가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재규어랜드로버 차량에 탑재될 예정이다.
 
로이터는 “컴퓨터 그래픽 카드, 인공지능(AI) 전용 칩 등에 이어 엔비디아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도 발을 뻗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모바일 반도체 최강자인 퀄컴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0월 사모펀드와 함께 스웨덴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인 비오니어를 5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퀄컴은 차량 내비게이션이나 각종 교통 정보를 표시하는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 칩을 설계해 르노와 혼다에 납품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산업 전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주류에 발맞추기 시작했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 시설 투자에 43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매출 94조1600억원의 46.3%에 해당하는 수치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금은 극자외선(EUV) 기반 15nm(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 V6 낸드 플래시 등 첨단 공정이 도입된 평택 캠퍼스와 중국 시안공장의 공정 증설·전환에 사용됐다. 또 평택 P3 라인 인프라 투자에도 쓰였다. 파운드리의 경우 평택 EUV 5nm 공정 증설에 투입됐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2019년 4월 이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생산 및 연구개발(R&D)에 133조원을 투자해 전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를 넘어서겠다”는 목표도 내비쳤다.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고 매출로 반도체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시설 투자에 쏟아 부었다”며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 차세대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3종. 사진=삼성전자
▲ 삼성전자 차세대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3종. 사진=삼성전자

이같은 투자는 올해에도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0조4510억원)를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올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는 새 파운드리 공장은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신규 공장 건립을 통해 삼성전자는 기흥·화성캠퍼스, 평택캠퍼스에 이어 미 오스틴·테일러공장까지 글로벌 반도체 생산 라인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20위권 수준에 그치는 등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점은 삼성전자에 위기 요인으로 지목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경쟁 업체들보다 다소 늦은 2018년에야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해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를 출시하면서 서서히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차세대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 3종을 공개하고, 통신 칩·프로세서·전력 관리 칩 등 전장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인포테인먼트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 V7’은 폭스바겐 ICAS3.1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탑재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차량에 탑재되는 전자 부품과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어서다.
 
이에 향후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반도체 칩을 생산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자동차와 차량용 반도체 칩을 개발할 것이라는 협업설도 제기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등 미래 기술 개발에 대한 기초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16년 오토모티브 전략 팀을 구성한 SK하이닉스는 현재 인포테인먼트 위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주요 칩셋 업체, 전장 업체, 전기차 업체들과 협력하며 중장기 시장 대응 기반을 마련하고, 조만간 가시화된 성과를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정부, 반도체 설비 투자에 57조1000억원 투입…세액 공제 혜택도 확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노력에 정부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정부는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19차 혁신 성장 BIG3 추진 회의’를 열고 미래차·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 등 BIG3 산업 중점 추진 과제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홍 부총리는 올해 BIG3 산업에 66조원 규모의 민간 설비 투자를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 57조1000억원을 투입하고, 팹리스(반도체 전문 설계)-파운드리, 반도체-미래차 등 기업 간·산업 간 협력 생태계 구축에 주력키로 했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 초격차 강화, 종합 반도체 강국 도약을 위해 올해부터 △수요 유망품목 R&D △핵심 인재 양성 △제조 밸류체인 개선 등 신규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한다. 또 전력 반도체 종합 발전 전략을 마련해 올해 중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올해 신규 R&D 사업인 전력 반도체에 72억원이 투입된다. AI 반도체는 299억원, 첨단센서 개발 사업은 153억원의 자금을 지원 받는다.
 
아울러 세액 공제 혜택도 대폭 커졌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15나노 D램 생산을 위한 기계 장치 등에 10조원을 투자할 경우 1조원(10%)까지 세액 공제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최대 3000억원(3%)까지 공제받을 수 있었다.
 
이는 반도체와 같은 국가 전략 기술에 투자하는 경우 세액 공제 혜택을 최대 50%까지 늘리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지원 대책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또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다소 뒤처져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리면서 경쟁 업체들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키로 약속한 만큼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또한 빠르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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