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수소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수소 경제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 전반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2020년 2월 4일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린·블루 수소 등 청정 수소에 대한 규정 등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위축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가 지지부진하게 대응하고 있는 사이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수소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도 수소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문제 의식을 느낀 정치권에선 ‘수소 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수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수소 경제 활성화에 힘을 싣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이 갈리면서 수소법 개정안은 수개월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울산 남구 수소연료전지 실증화센터에서 수소선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울산 남구 수소연료전지 실증화센터에서 수소선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미국·유럽·일본, 수소 경제 선도…최근 경쟁 뛰어든 중국 “수소, 주요 에너지원으로 육성”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달 3일 페이스북에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수소선박은요?’ 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같은달 1일 열린 비공개 회의의 뒷얘기를 전했다. 당시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수소선박 상황은 어떻습니까?”라고 참모들에게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수소선박 분야에서도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음 정부도 (수소선박 육성에) 꼭 역점을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LNG 운반선을 초기에 선점해 글로벌 시장을 압도한 것처럼 수소선박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수소선박 사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며 직접 점검한 것은 현 정부의 수소 경제 활성화 기조와 궤를 같이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독보적 우위를 지닌 수소연료전지 기술과 LNG선 건조 기술을 바탕으로 수소선박 핵심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소선박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한국조선해양은 이르면 내년 수소 운반선에 들어갈 수 있는 2만m³ 규모의 수소탱크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또 2025년께 수소 운반선을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수소 추진선은 2027년까지 시범 운영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다만 선박용으로 쓸 수 있는 SOFC(고체산화물연료전지)가 아직 개발 단계고, 가격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단점으로 인해 수소 추진선 개발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부터 수소 추진선에 수소연료전지를 공급할 업체를 물색하고 있으나 아직 충분한 출력과 효율을 가진 연료전지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가 수소선박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일본은 액화 수소 운반선을 통해 세계 최초로 수소 해상 운송에 성공하는 등 수소 경제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정보분석기업 S&P 글로벌 플래츠에 따르면 올 1월 28일 호주 헤이스팅스에서 출항한 액화 수소 운반선 ‘스이소 프론티어’는 1250㎥ 규모의 수소탱크에 약 50톤의 액화 수소를 싣고 일본 고베항에 2월 24일께 도착했다.
 
스이소 프론티어는 일본·호주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갈탄 수소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건조한 선박이다.
 
이번 수소 해상 운송으로 국제 수소 공급망 구축을 위한 물꼬가 트이게 됐다. 일본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호주로부터 2030년께 연간 최대 22만5000톤의 탄소 중립 액화 수소를 공급받는다는 구상이다. 이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목표에도 속도가 붙게 됐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050년 기준 수소 2000만톤을 자동차·선박·철강 등 전 산업 분야에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해외에서 싼 가격에 생산한 수소를 일본으로 들여오는 전략을 세웠다.
또 수소연료전지, 수소 공급망, 수전해 기술 등 3개 분야, 10개 항목을 지정해 수소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국회 수소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수소차.
▲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국회 수소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수소차.

일본이 수소선박을 통해 수소 산업을 키우고 있다면 유럽은 수전해 기술 등을 통해 수소 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폴란드를 제외한 EU 회원국이 유럽 기후법에 잠정 합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3.7%까지 늘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유럽 그린딜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EU는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 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은 유럽 그린딜을 발표한 바 있다.
 
EU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꼽고,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한 로드맵인 ‘2020 유럽 수소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 에너지 공급의 2% 수준인 수소 사용 비율을 2050년 24%로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전해 생산 시설을 구축키로 했다. 2024년 최소 6GW에서 시작해 2030년 최소 40GW까지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수소 생산에는 2050년까지 238조~620조원이 투자될 것으로 보인다.
 
수소 저장과 운송 등에는 86조원이 투입된다. 수소 사용을 철강·화학 등 다양한 산업에 확대하고, 수송용 수소의 수요도 늘릴 계획이다. 이에 2025년부터 주요 도로 150km마다 수소 충전소 설치를 의무화했다.
 
미국은 에너지부(DOE)를 중심으로 수소 경제를 추진 중이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4개 이상의 수소 산업 허브를 미 전역에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올해부터 2026년까지 80억달러(약 9조7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전해 장치 기술 향상 및 상용화, 청정 수소 생산 및 운송·저장 등에 힘쓰기로 했다. 또 민·관 협력체를 꾸려 수소와 연료전지 시장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주요국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도 발을 들였다. 중국 정부는 최근 ‘수소 에너지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2035년까지 수소를 국가 에너지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키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2025년까지 수소 에너지 관련 중요 기술을 확보하고, 핵심 부품 공급망을 정비하기로 했다. 수소차 보유 대수도 5만대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공동취재사진
▲ 국회 본회의장. 사진=공동취재사진

◇수소법 개정안 청정 수소 인정 범위 놓고 여야 대치…대기업 투자만 날로 위축
 
문재인 정부도 수소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수소 산업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수소차와 연료전지를 축으로 수소 경제 생태계 구축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다. 수소법 개정안 등 다수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면서 조속히 육성해야 할 수소 산업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수소 관련 법안은 10건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많이 발의된 법안은 수소법 개정안으로 총 7건이다. 또 ‘국제 수소 거래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 1건과 ‘수소 도시 조성(건설) 및 운영에 관한 법’ 2건 등도 계류돼 있다.
 
핵심 법안인 수소법 개정안은 2050년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해 청정 수소 중심의 수소 경제 전환을 가속화하고, 정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청정 수소 정의 및 인증 제도, 청정 수소 판매·사용 의무 부여로 청정 수소 시장 조기 구축 등이다.
 
수소연료전지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 도입 역시 개정안이 통과돼야 실현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2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소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법에 허점이 많아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후 수소법 개정안이 발의되며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여야 간 이견이 커 국회 상임위원회 통과가 수차례 무산됐다.
 
여야는 청정 수소 인정 범위를 두고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다. 여당에서는 탄소 배출이 없거나 적은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생산한 그린 수소 위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자력을 활용해 생산한 수소는 정부가 정의하는 그린 수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또한 원자력을 활용해 생산한 수소를 ‘옐로 수소’라고 칭하며 사실상 원전을 활용한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반면 야당은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 방안을 수소법 개정안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4시간 상시 가동될 뿐만 아니라 LNG 대비 발전 원가가 4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원전 없이 수소를 생산할 경우 대부분의 수소를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30년께 상용화될 혁신형 소형모듈원전(SMR)은 기존 원전 대비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높은 데다 설치가 용이한 만큼 이를 활용한 수소 생산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소법 개정안이 수개월째 국회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민간 투자는 난항을 겪고 있다. 수소 관련 투자를 위해 안정적인 제도와 정책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하는데 여야가 대치하며 이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열린 제3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대기업들은 2030년까지 43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 상태로는 대기업의 투자는 단행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신성장 동력인 수소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정부가 법 개정 등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며 “수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속 계류되면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수소 경제 실현의 불확실성도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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