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부의 코로나19 영업 제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전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370만명에게 1인당 최소 600만원의 손실보전금이 일괄 지급된다. 정부는 12일 국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59조 4000억원 규모의 올해 2번째 추가경정예산을 의결했다. 이 보전금은 코로나 손실보상법에 따라 작년 10월 이후 입은 피해의 100%를 보상해주는 손실보상금과는 별개로 지급되는 위로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제시한 1호 공약이기도 하다.
 
2차 추경에는 손실보전금 이외에 지난해 3분기부터 시행하고 있는 손실보상제도를 개선, 소상공인의 손실보상 보정률을 현행 90%에서 100%로, 분기별 손실보상금 하한액을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하는 비용과 저소득층 225만 가구에 긴급생활지원금 75만~100만원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예산 등도 반영됐다. 그러나 이미 폐업했거나 코로나19 창궐 이후 창업한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보상 기준이 애매해 지급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들에 대한 지원 여부가 세밀히 검토돼야 하겠다

윤 정부의 손실보전금 일괄 지급 방침은 불과 보름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발표했던 차등 지급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인수위는 당시 소상공인 손실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업체당 지급 상한액을 600만 원으로 하고 업체 규모와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인수위의 차등 지급 방안이 제시되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면서 윤 대통령의 공약 파기 논란이 일자 당정이 정무적 판단에서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보여진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인수위에서 차등 지급한다고 해 혼선이 있었는데 당에서 강력하게 최소 600만원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히고 “(정부가) 그 부분을 수용해 대통령 공약사항이 그대로 이행이 된다”고 말했다.

2년 넘게 큰 희생을 치르면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성실히 따른 소상공인에게 국가가 피해를 보전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추경 편성 시기를 미루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확정하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들에게 상황 설명이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차등 지급에서 일괄 지급으로 다시 말을 바꾼 것은 6.1 지방선거를 의식. 돈을 풀어 표를 매수하려는 의도라도 주장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당정은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은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본예산 세출 사업의 지출 구조조정과 예상보다 많이 걷힐 세수를 활용하여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추경을 편성하기로 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적자 국채 발행은 국가채무를 증가시켜 재정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다 세수는 그냥 놔두어도 어차피 세계잉여금으로 남아 국채 반환 등에 쓰이게 되어 있다. 엄격히 말해 정부가 쓸 돈을 올해 앞당겨 쓰면서 빚을 내지 않고 추경을 편성했다고 생색낼 일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40여년 만의 인플레 위기 상황에서 이번 추경과 같은 대규모 돈 풀기가 가뜩이나 어려운 물가 상승을 더욱 자극, 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에 더 많는 관심이 주어져야 하겠다.
 
어쨌든 추경 편성 때마다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가 대규모 세수 오차 덕분에 빚 없이 추경을 편성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내려운 행운이라 하겠다. 그러나 나라 살림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수가 61조원 이상 과다 징수되자 예측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일부 세제실 직원들을 문책했다. 그런데도 올해 또다시 53조 원이나 세금이 더 걷힐 것이라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변하고 한율과 유가 등 주요 거시경제 변수가 달라졌다고 해도 이처럼 과다 오차를 낸다는 것은 ‘고무줄 세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거액 추경을 집행하다가 재원 부족으로 빚을 내는 상황을 맞지 않을 까 하는 우려가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과도한 세수 오차를 보이는 문제점을 다시 한번 정밀 분석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회도 정부의 재원 마련 방안이 과연 현실적인지를 철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재정 중독 현상도 심각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이번 추경 규모가 지금까지 가장 컸던 2020년 3차 추경(35조 1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인데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야당에서는 이번 추경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거용 돈 풀기’라고 비판하면서도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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