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균형발전, 지방분권 등 산적한 해결 과제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전국에서 모두 7616명이 후보 등록을 마친 6·1 지방선거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각 17명의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226명의 기초단체장, 779명의 광역의원, 2602명의 기초의원 등이 선출된다. 대선주자들까지 직접 나선 7개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모레(19일)부터 13일간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양 진영이 전면전을 치렀던 대선(大選) 후 석 달도 채 안 돼 다시 치러지는 전국 선거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득표 차가 0.73%포인트에 그쳤던 만큼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확실한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다. 양측 모두 사활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직전 대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선거전을 주도하고 있으니 대선 연장전이나 다름없다. 지방선거 이후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벼랑 끝 대치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 이번 선거가 역대 비호감 대선의 재판이 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집권여당의 경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약 3주 만에 치러지는 첫 선거 결과에 따라 윤 대통령 집권 1년차 국정 동력의 강도도 달라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집권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지방선거 승리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국민의힘은 대선 승리로 정권을 교체했으나 국회에서는 소수당의 무기력을 재확인했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 다수 의석의 위력(?)을 과시했다.

제1야당 민주당의 압도적 의석 점유는 2024년까지 국민의힘이 안고 가야 하는 숙제다. 6·1 지방선거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집권 초기부터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절반 이상에 승리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싹쓸이했던 지방권력의 균형을 되찾는다는 복안이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과 맞물렸던 2018년 지방선거는 당시 처참한 성적을 냈다. 서울 25개 구청장 중 서초구청장만 빼고 민주당이 싹쓸이한 것은 물론 서울시의회는 110석 중 국민의힘 시의원이 단 6명뿐이었다.

민주당은 서울시장에 송영길 전 대표, 경기지사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충북지사에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총출동했다. 특히 대선 패배 후보가 상당 기간 휴식기를 가졌던 종전 관행과 달리 이재명 전 대선 후보(전 경기지사)를 직접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선수로 차출하고,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전국 선거를 이끌도록 했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 절박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여야 모두 수도권에 거물급 인사를 대거 포진시켜 갖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다 보니 이번 선거가 명실상부 주민생활 밀착형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지방(地方)선거, 고장마다 특색있는 자치(自治)행정을 기대하기엔 무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일군다는 ‘민선(民選)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지 27년이 됐다. (지방의회 부활은 31년) 현대 사회에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운영 형태로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 사회적 갈등 해결 등 지역사회 위기 해결능력이 떨어진다. 획일화된 공공서비스도 지역주민들의 다양하고 차별화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공천권을 행사하는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해도 지방정치의 고유 영역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중앙정치와의 친밀도’인 현실은 지방자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닐까.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의 대리전 무대로 전락해선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 경쟁을 시작해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중앙정치에 오염된 지방선거라는 세간의 평이었는데, 이번 선거는 가히 미증유(未曾有)의 사례로 기록될듯하다.

사실 우리나라 지방자치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도 ‘자치'도 보이지 않는 선거라는 점일 것이다. 말이 지방자치 선거이지,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중앙정치권의 싸움판으로 점철돼 온 것이 우리의 지방선거사다. 코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로 바로잡아야 한다. 여야는 오로지 승부에만 집착해 한 표라도 더 얻을 주자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을 뿐, 과연 지역 발전을 견인할 역량을 갖춘 인물인지 여부는 전혀 따져볼 생각조차 않는 모양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여야는 표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사탕발림 구호로 유권자를 현혹해서는 안 된다. 현실성 있는 공약과 페어플레이로 유권자 심판을 받아야 한다. 네거티브와 흑색선전이 없는 차분하고 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여야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특히 후보들은 깨끗한 정책 대결로 선거운동에 임해야 한다.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흑색선전으로 지방자치를 진흙탕으로 빠뜨려선 곤란하다. 지방선거는 국가적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도 앞으로 4년 동안 지방 살림을 책임질 진정한 일꾼이 누구인지를 꼼꼼하게 가려내야 한다. 깨어 있는 유권자 의식만이 자치를 살리는 길이다. 내 손에 우리 지역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자세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 내 고장에 출마한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세우는지는 고사하고 어떤 후보가 나오는지조차 잘 모르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지방선거는 주민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무원을 지휘할 단체장과 이들을 감시·견제해야 할 자치단체 의원들을 뽑는 선거다. 또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책임지는 교육감도 이날 가려진다. 제대로 된 일꾼을 뽑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당선 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꼼꼼히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책선거를 강조하는 이유다. 여야와 유권자 모두 다시 한번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지방의회를 일당이 장악,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는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곳이 서울특별시다.

지난해 4·7 보궐선거로 10년만에 돌아온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은 압도적 다수의석(전체 110석 중 99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벽에 막혀 사사건건 쓴맛을 봐야 했다.
지난해 6월, 민주당이 완전 장악한 서울시의회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 사업으로 추진한 추경 예산 147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이 대표적 사례.

대부분 서민과 저소득층 자녀 등을 지원하는 사업인데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모두 깎아버렸다. ‘서울 런’ 사업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유명 학원 강사의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사교육비 걱정 없이 공부하게 해서 교육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68억원을 모두 삭감해 사업 자체가 무산됐고, 청년들에게 주거와 창업 지원 정보를 제공하는 예산도 깎였다. 저소득층 등 시민 5만명에게 스마트 워치로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서울 안심워치 시범사업’ 예산 47억원도 없앴다.

“오 시장 예산이라고 전액 삭감, 식물 시장 만들려는 다수당의 횡포”라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의 항변이다.

이보다 앞서 서울시의회가 지난해 4월 이틀 연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사 발령에 유감을 표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오 시장이 시의회 임시회기 도중 인사를 낸 게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취지다. 시의회 안팎에선 “서울시장 고유 권한에 대한 월권행위” “도넘은 오세훈 길들이기” 등 비판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2월 31일 본회의에서 의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시장의 발언을 중지시킬 수 있는 ‘서울시 기본조례’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시장·교육감 등 관계 공무원이 본회의나 위원회 회의에서 의장이나 위원장의 허가 없이 발언할 경우, 의장 또는 위원장이 발언을 중지시키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다. 퇴장당한 공무원은 의장이나 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사과한 뒤에야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 의석수를 앞세워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시정을 좌지우지하겠다는 폭거(暴擧)로 현재 대한민국 국회 다수당을 차지한 민주당의 입법폭주를 무색하게 한다.

자치단체장의 비리(非理)와 일탈(逸脫)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최근 비위가 적발된 전남·충남 지역 군수에 대해 각각 검경에 수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토석채취 업체에 편의를 봐준 대가로 본인 소유 비상장 주식을 평가 가치보다 높게 넘긴 것으로 드러난 전남 지역 한 군수를 금품 수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이 군수는 원래 본인 소유였던 산지를 취임 직후 동서를 거쳐 해당 업체에 매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후 2017년 12월, 201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업체 측에 주식 5만4000주를 총 5억4000만원에 매도해 주식 가치보다 10배가량 많은 차익을 챙겼다. 사실상 휴업 상태에 있던 주식을 뻥튀기해 팔아넘긴 것이다. 본인 소유 토지에 단독주택 부설 주차장을 만들다가 허가받지 않은 인접 산지를 깎고 도로를 개설한 충남 한 군수에 대해선 불법 전용 땅에 대한 복구 명령 및 원상회복 명령을 내리고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요청을 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가정폭력 의혹을 받는 최종환 파주시장·이정훈 강동구청장을 제명하는 일도 있었다.

지방자치의 선봉장이어야 할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저지른 사건사고들은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 추세에 따라 공급자 중심의 행정에서 수요자 중심의 행정으로 변화하기 위해선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런데 지방분권 논의가 힘을 얻어, 정부의 주요 과제로 거론되는 시대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자질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특히 주민의 요구를 수렴해 행정에 반영하고, 집행부를 견제·감시해야 할 지방의원들이 일탈을 일삼자 지방의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함량 미달 의원을 시민의 손으로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전국 곳곳에서 지방의원들의 일탈이 계속되고 있다. 지위를 이용한 이권 챙기기에 막말·갑질은 물론 폭행과 자해에 성추행·음주운전·술값 시비 등 유형도 다양하다.

잇달아 터지는 이들의 몰상식한 작태를 보다 못한 주민들은 "지방의회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라거나 "의정비를 모두 환수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지난 2019년 1월, 경북 예천군의원들이 해외연수 중 가이드 폭행, 성매매 요구 등의 물의를 빚어 전 국민이 분노했던 사건과, 2020년 2월 서울 강북구의원의 동장(洞長) 폭행 사건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대표적 경우다.

감사원은 최근 ‘가족 땅 투기 의혹’을 산 세종시의회 의장 등 2명에 대해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징계 등 인사조치하라고 시의회에 통보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작년 3월 세종시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 땅 투기 의혹을 감사해 달라는 공익 감사 청구에 대한 감사 결과문에서 “두 사람이 어머니·배우자 등 직접적 이해관계인이 개입된 사업 예산을 심의·편성하고 이를 지방의회에 신고도 하지 않은 건 위법·부당하다”고 했다. 지방자치법 등에는 지방의원은 부모·배우자 등이 연루된 사업 예산 심의를 할 수 없고, 이를 지방의회에 신고하게 돼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이 의장 모친은 2016년 세종시 조치원읍 봉산리 토지 1812㎡(548평)를 대출받아 매입했다. 김 의원 아내도 2015년 대출을 받아 바로 옆 토지 1573㎡(475평)를 샀다. 이후 2019~2020년 두 땅을 지나는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땅값이 3~4배로 뛰었다고 한다. 이 의장 모친은 도로로 편입된 일부 토지 보상금으로 1억252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의장과 김 의원 모두 땅 매입 당시 시(市) 도로 개설 사업을 심의하는 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위원이었고 실제 이 도로 사업 심사를 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4년 7월 1일부터 2019년 1월 31일까지 4년 7개월 동안 전국 226개 기초의회에 제6회~제7회 지방선거로 당선된 기초의원들의 징계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동안 지방의원들의 징계 현황을 확인해봤다.

226개 기초의회에서 의원 징계 내역이 있다고 밝힌 기초의회는 47개였다. 47개 기초의회에서 79명의 의원들이 징계를 받았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징계받은 경우도 있어 전체 징계 건수는 85건이었다.

경실련이 2018년 당선된 기초의원 입법 실적을 조사한 결과, 4분의 1이 1년에 한 건의 조례안도 발의하지 않았고, 임기 내에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도 184명이나 됐다.

기초의회 의원은 의정자료 수집과 연구 명목으로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활동비를 받는다. 전국의 기초의원에게 해마다 1300억여 원의 국민세금이 지급된다.

전문가들은 "의정활동을 위한 전문성과 공인 자격을 갖춘 인재를 공천하기보다 지역 국회의원 등 공천권자의 수족(手足)이 될 사람을 공천하는 정당의 책임이 크다"며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를 없애고, 시민이 언제든 문제가 있는 의원에 대해선 의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비수도권 시·군 대부분이 소멸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세종시를 제외한 228개 시·군·구(제주·서귀포시 포함)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105곳(46.1%)에 이른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발표한 인구감소지역도 89곳이나 된다. 읍·면·동 기준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한국고용정보원 발표를 기준으로 전국 3545개 읍·면·동 가운데 1702곳(48%, 2020년 4월 기준)이 소멸위험지역이다. 사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소멸위기에 놓여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가 하면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30%가 안 되는 수준이다. 70%는 정부 예산을 가져와야 한다.

할 일이 산처럼 쌓여있고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비수도권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수도권 블랙홀로 인한 국가적 폐해들을 타파하고,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기반을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균형발전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이 자신의 사명과 입지(立地)를 충분히 인식하고, 유권자들은 지방자치의 본령에 걸맞게 투철한 시민의식을 십분 발휘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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