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보 등 총체적 위기...遠心力 보다 求心力 강해져야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어제(6월 6일)는 현충일(顯忠日)이자 24절기(節氣) 중 아홉 번째 절기인 망종(芒種)이다. 망종이란 벼,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더불어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이기도 하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는데,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어서다.

특히,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 바쁜 농촌의 사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망종에 때맞춰 오래 기다렸던 반가운 단비가 선물처럼 내려 영농기 가뭄에 타들어가던 농심(農心)을 어느 정도 달래주었다. 올해 전국 누적강수량은 157.7mm로 평년 287.8mm의 절반에 그칠 정도로 전국의 가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씨를 뿌리고 모를 심는 망종 절기에 요즈음의 대한민국 정치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망종을 맞은 농부처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촌음(寸陰)을 아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닐까.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는 ‘미니 대선(大選)‘ 또는 ’대선 전초전’으로 불린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서울·부산시장, 기초단체장 2곳, 광역·기초의원 다수)를 시작으로 지난 3.9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이은 1년 2개월 사이 세차례의 대규모 선거정국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總選擧)까지 2년 가까이 선거가 없는 휴지기(休止期)에 접어든 것이다. 나라 전체를 봐서도 금쪽같은 시간이다.

한마디로 선거라는 떠들썩한 ‘잔치판’이 끝나고 이제 평상심을 되찾아 저마다 자신의 본분과 위치에 걸맞는 본연의 업무에 매진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행된 해외 입국자 규제가 내일(8일)부터 사실상 모두 풀린다. 백신 미접종자의 격리 의무는 없어지고, 국제선 항공 편수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한다. 확진자 감소세 유지로 방역·의료체계 대응 역량이 충분한 만큼, 그간 방역에 쏠린 정책 기조를 '경제 회복'으로 옮긴 것이다. 이제 일상회복 범위가 해외여행까지 넓어지게 됐다.

이에 발맞춰 특히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를 비롯해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선거결과에 나타난 민심을 냉정하게 성찰함과 동시에 자세를 고쳐잡고 나라와 지역의 미래를 위해 민생(民生)을 챙기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와 정치인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쉬 믿음이 가지 않는듯하다.

전처럼 ‘도돌이표 정치’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거센 파고(波高)가 덮치고 있어 까딱 잘못하다간 길을 잃거나 침몰할 수도 있을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경제 위기를 비롯한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와 있다” “(태풍으로) 창문과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급등했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었다. 돼지고기, 라면 등 144개 주요 품목으로 구성돼 ‘장바구니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6.7% 올랐다.

물가가 오르면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이는 상황이라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이자부담이 커지고 기업대출도 위축될 수 있다.

미국발 충격(파월 미 연준<聯準·Fed> 의장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거듭된 언급과 금리 인상, 긴축 본격화 등)에다 글로벌 공급난,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원자재(原資材)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이미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경제 3대 지표인 생산·소비·투자가 4월부터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고, 6개월 뒤 경기흐름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15조원 이상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고, 무역수지도 4~5월 연속 적자를 기록해 환율 방어에도 비상등(非常燈)이 켜졌다.

특히, 국제금융협회는 어제 ‘세계 부채 보고서’에서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3%로 조사 대상 36개국 중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가계빚이 GDP보다 많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의 기업부채 비율은 최근 1년 동안 5.5%포인트 늘어 증가 속도 면에서 조사 대상국 중 2위였다. 가계와 기업을 아우르는 민간 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임계치(臨界値)에 이른 것이다.

경제 곳곳에서 전방위적 경고음(警告音)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1998년 외환 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땐 정부 재정이 방파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재정 여력도 충분치 않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더 빚을 내 돈을 풀면 시중 금리와 물가를 자극해 악순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재정·금융 카드가 모두 바닥난 상황에서 고물가·저성장의 태풍에 대응하려면 결국 기업과 시장의 활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는 ‘1000조원 투자’(10대 기업 기준)를 선언한 기업들이 맘껏 투자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푸는데 앞장서야 한다.

여야 협치(協治)와 민간·정부 전방위 공조(共助) 없이는 닥쳐올 경제위기 태풍을 헤쳐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안보 위기도 심각하다.

북한은 5일 오전 9시 8분쯤부터 43분쯤까지 평양 순안 등 4곳에서 동해상으로 8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속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변칙 기동을 하는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비롯, 초대형 방사포(KN-25) 등 4종의 미사일을 2발씩 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탄도미사일 ‘소나기 발사’는 처음이다.

한국군과 주한·주일 미군기지 등 여러 목표물을 다양한 미사일로 동시에 타격하고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날 탄도미사일 발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 도발이자, 올해 들어서만 벌써 18번째 무력시위다.

지난달 25일 '화성-17형'으로 보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등 3발을 섞어 쏜 지 11일만이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상황에서 감행한 도발이었다.

북한은 이날 한미 해군이 일본 오키나와 근방에서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마친지 하루 만에 무력 시위를 감행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지난달 24일까지 ICBM을 6회나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고 있다.

올 초 핵실험·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조치 폐기 방침을 시사했고 3월 24일 ICBM을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궤적으로 발사해 모라토리엄을 깼다.
특히 최근에는 7차 핵실험 준비를 대부분 마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기 결정만 남긴 것으로 군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한편 한미(韓美)는 6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8발 도발에 맞서 지대지 미사일 8발을 대응 사격했다. 발사된 미사일은 한국군 측에서 7발, 미국군 측에서 1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도발에 대응해 이날 새벽 4시 45분부터 약 10분간 연합 지대지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 총 8발을 동해상으로 사격했다고 발표했다.

합참은 “한미 연합 지대지미사일 사격은 북한이 다수 장소에서 미사일 도발을 하더라도 상시 감시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도발 원점과 지휘 및 지원세력에 대해 즉각적으로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군은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며,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보 불안을 가중시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사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 아닌 진영(陣營)을 보고 정치를 하는 정치권에 대한 냉소주의(Cynicism)가 국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점이다.

이는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50.9%로 2002년 6월 13일 월드컵 열풍 속에서 치러진 제3회 지방선거(48.9%)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저조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 달여 전 진행된 대선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로감과 대선 패배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 포기, 지방선거의 중앙정치화 등 여러 요인이 꼽힌다. 민주당 텃밭으로 통하는 호남은 항상 높은 투표율을 보였으나 이번엔 광주가 37.7%의 투표율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오죽하면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까지 했을까. 국민 일반의 상식을 행동으로 거부하며, 책임지지 않고 남탓으로 돌리는 정치행태를 보인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는 평가다.

168석의 민주당이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단독 처리하며 독주를 택하고,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하는 등 실망스런 행보를 보인 게 사실이다.

정치권이 잇달은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과 경고를 아랑곳않고 여야 모두 반성과 쇄신을 하지 않은채 서로 눈앞의 당리당략에 매몰돼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민주당이 발목 잡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협치 거부 등에 나설 경우, 둘 중 한쪽은 곧바로 국민의 역풍(逆風)을 맞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서 새삼 경계해야 할 것은 많은 국민들이 한국정치가 극단화(極端化)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지만, 극단적인 주장을 방관하거나 어떤 경우 동조한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중간이 약화되다 보니 중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또한 중도적 차원에서 ‘합리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면 도피자로 비난받기도 한다.

자석(磁石)처럼 양극단은 상대방을 서로 밀어내기 때문에 통합(統合)이 불가능하다. 가치관 투쟁을 하는 정치영역에서 긍극적인 통합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정도의 통합은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치는 구심력(求心力) 보다는 원심력(遠心力)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기에 팬덤정치, 이념적 색채를 줄여 독단(獨斷)과 아집(我執)을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상생(相生)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해야한다는 주문이다. 민생복리(民生福利)를 위해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치를 하라는 얘기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 (Join, or Die.)”

이 유명한 문구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1754년 5월 9일 자신이 경영하던 펜실베니아 가제트 신문에 실린 만평(漫評)을 통해 한 말이다.

이 문구는 식민지 주민들의 대영제국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통합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전 한국 사회를 향해 뼈아픈 지적들을 종종 던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준 것이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一喝)한 발언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중국 방문길에서 “중국은 국가주석이 ‘연구·개발 비용은 얼마냐?’고 물을 정도로 반도체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는 반도체 공장 건설을 신청해도 허가가 안 나고 도장은 1000개나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낡은 행정과 우물 안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었다. 27년이 흐른 지금, 정치와 행정은 얼마나 달라졌나.

오늘 우리 정치권이 혁정취신(革鼎就新-솥의 고인 물을 쏟아내고 새롭게 채움)의 자세로 거듭나기를 국민들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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