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전 세계에서 친환경차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9월 20만대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안에 3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전기차가 차세대 모빌리티로 급부상하고 있으나 충전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충전기 고장·오류, 결제 시스템 등에 대한 불만이 적잖다.
 
▲ 서울 소재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 서울 소재 한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

◇전기차 이용자 10명 중 3명 “충전기 고장·오류로 충전 못 해”
 
전기차 충전 플랫폼 ‘EV 인프라’를 운영하는 소프트베리에 따르면 앱 사용자 15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기차 충전 이용 실태 조사 결과 전기차 충전소 이용 시 가장 불편한 요소는 ‘잦은 충전기 고장·오류(30.1%)’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이용자 10명 중 3명이 충전기 고장·오류로 충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적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경험을 한 사례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평소 퇴근 후 야간에 전기차 충전을 자주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하루는 밤 늦은 11시에 도착해 충전하려 했더니 전기차 충전기에 못 보던 코드가 떠 있었다”며 “충전기 디스플레이에 ‘no-5’라는 코드와 함께 ‘오류 점검’ 등에 불이 켜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아침 해당 문제를 담당 업체에 신고했고, 오래지 않아 수리가 완료됐다”면서도 “그러나 전기차 충전을 해 온 지 2년을 넘기는 동안 너무 자주 고장·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고 답답해 했다.

충전기 이용 현황이 실제와 다르게 표기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했다.
 
전기차를 소유하고 있는 또다른 누리꾼은 “한 전기차 충전 플랫폼 앱으로 근처에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찾았더니 모두 ‘충전중’이라고 표시돼 있었다”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충전기의 충전 경과 시간은 무려 12시간, 58시간이나 됐다”고 전했다.
 
이어 “수십시간이나 충전 중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누군가가 해당 충전기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솔직히 화가 났다”고 덧붙였다.
 
올해 1월 28일부터 시행된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전기차는 충전을 마친 후 충전 구역에서 차량을 이동해야 한다. 급속 충전기의 경우 1시간, 완속은 14시간을 초과해 주차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전기차 이용자들의 불만이다. 실제로 국민신문고에 따르면 해마다 증가한 전기차 충전 관련 민원은 최근 5년 간 총 3만1102건을 기록했다. 이 중 충전 방해 등 충전 시설 관련 민원이 전체의 91.0%(2만801건)나 됐다.
 
마친가지로 충전 방해 상황을 자주 접했던 그는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근처 전기차 충전기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충전 중인 차량은 없었다.
 
그는 “수십시간을 충전 중인 전기차 이용자에게 항의할 생각이었으나 충전 구역은 텅텅 비어 있었다”며 “혹시나 해서 전기차 충전 플랫폼 앱을 다시 확인했으나 여전히 ‘충전중’으로 표시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전기 이용 현황의 오류로 불편을 겪은 경우는 처음이었다”며 “답답한 나머지 전기차 충전 플랫폼 앱에 문의했더니 충전기의 이용 정보를 전송하는 서버에 종종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충전중’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들은 고칠 수 없고, 대신 충전기 제조사에 수리를 요청하겠다 했다”고 황당해 했다.
 
전기차 충전 플랫폼 앱이 해당 문제를 인식하고 수리에 나서긴 했으나 충전기 오류를 고칠 수 있는 곳이 충전기 제조 업체 뿐이라는 점은 큰 단점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리 신고가 접수되지 않을 경우엔 오류 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것도 매우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오늘날 전기차 충전기 고장·오류가 자주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무조건적인 보조금 지급 정책이 지목된다.
 
앞서 정부는 2020년부터 민간에 전기차 충전 사업을 전면 개방하고, 충전기를 설치한 모든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충전 인프라를 조속히 구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는 허점도 존재했다. 일부 업체들이 충전기 설치 보조금으로 이익을 취한 뒤 사후 관리는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다. 이에 충전기 고장·오류는 급속도로 증가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 이용자들은 충전과 관련해 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 올해 3월 도입된 전기차 충전기 QR코드 결제 서비스. 사진=환경부
▲ 올해 3월 도입된 전기차 충전기 QR코드 결제 서비스. 사진=환경부

◇전용 회원카드 없으면 충전기 이용 불가 ‘수두룩’…충전 요금도 천차만별
 
전기차 충전기를 이용하고 싶어도 충전 비용을 결제할 수 없어 충전이 불가능한 경우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충전기 사업자들이 일반 체크카드, 신용카드가 아닌 전용 회원카드로만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불편을 우려한 환경부는 전기차 이용자들의 충전 편의를 증대시키고자 정부 차원의 회원카드를 발급해 충전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카드는 민간 충전기와 호환이 잘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충전기 사업자 간 제휴에 따라 회원카드 호환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전용 회원카드가 아니면 더 비싼 요금을 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기차 전문 온라인 사이트 타고에 따르면 현행 환경부가 설치한 충전기에서는 어떤 사업자의 회원카드로도 동일한 가격(kWh당 255.7원)에 요금을 결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전기차 충전기 업체 에버온이 제조한 충전기에서 에버온 전용 회원카드로 비용을 지불할 땐 kWh당 176.3원으로 매우 저렴하게 충전 가능했다. 반면 다른 사업자들의 회원카드로 결제할 경우 kWh당 360.0원의 요금이 책정됐다. 이는 전용 회원카드 대비 2배 이상 비싼 것이다. 환경부 회원카드보다도 kWh당 100.0원가량을 더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충전기 사업자별로 충전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거의 모든 회원카드를 발급받는 전기차 이용자들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차 구매를 꺼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인 짧은 주행거리를 감안해서라도 언제 어디서든 충전할 수 있도록 회원카드를 모조리 발급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전기차 충전 사업자는 무려 33곳에 달한다. 그러나 제각기 전용 회원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게끔 조치해 둔 탓에 전기차 이용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여러 장의 회원카드를 들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든 전기차 사업자들의 충전기에서 이용 가능한 통합 결제 시스템이 하루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교통카드 한 장이면 전국을 다닐 수 있는 세상이다”며 “그러나 전기차 이용자는 충전을 위해 수십장의 회원카드를 들고 다녀야 한다”고 현 세태를 꼬집었다.
 
이어 “전기차 충전기 이용 시 결제 방식이 불편하다면 정부가 목표하고 있는 전기차 보급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민·관 구분 없이 하나의 회원카드로 전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충전 결제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전기차 이용자들의 불만과 전문가들의 지적을 의식한 정부는 보다 편리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례로 환경부는 올 3월 14일부터 티맵, 카카오모빌리티 등 민간 플랫폼 사업자와 함께 전기차 충전기 QR코드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원카드 없이도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비추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만큼 전기차 이용자들의 충전 편의를 대폭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환경부는 모든 충전기 사업자를 대상으로 QR코드 결제 서비스 참여를 적극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최근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플랫폼 ‘모두의충전’을 운영하는 스칼라데이터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기술 창업 투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최종 선정됐다. 팁스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민간 투자 주도형 육성 프로그램이다.
 
현재 모두의충전은 전기차 충전기마다 사업자가 달라 여러 장의 회원카드를 발급해야 하는 불편한 결제 방식을 간편 통합 결제 솔루션인 ‘모두페이’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전기차 이용자들의 불편도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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