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죽기 전에 할 일이라니.... 무슨 거창하고 심각한 일을 말하려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 의미를 느껴서 중점을 두는 일이라고 바꾸어 말하면 어떨까?

후세를 키우는 일이 그 중 하나다.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딸네 가족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 하나 뿐인 딸에게는 두 외손녀가 있다. 큰 외손녀 줄리아는 지난 가을 대학생이 되었다. 생물학이 전공이고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 병원에서 인턴 실습을 할 수 있을지 물어 왔다. 인턴?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분의 자녀와 연관된 말이 아닌가? 병원 인턴? 그것으로 증명서를 발급 받아 대학원엘 쉽게 가려는? 그러자 그 애는 증명서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 저 증명서 필요 없어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고 싶어서요.’

또랑또랑한 소녀의 목소리. 내 손녀 맞나 싶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남편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을 좋아한다. 중국 연변의 젊은이, 베트남 하노이의 젊은이도 열성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면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에 데려와서 공부시키려고 했다. 그들 중 결혼한 젊은이의 아기들한테 ‘한국 할아버지’로 대접받는 것이 그의 기쁨이기도 하다.

그러니 외손녀의 배우고자 하는 소망을 나 몰라라 할 남편이 아니다. 친구들에게 묻고, 다시 친구들의 아들딸들에게 물어 줄리아가 인턴 실습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낸다. 소녀의 소망대로, 첫 2주일은 ‘피부과’에서, 다음 2주일은 ‘성형외과’에서.
 
교수인 딸은 여름학기를 개설한 대학에서 한 달 동안 강의를 맡게 되어 학교 근처 레지던스에 둥지를 틀었다. 외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본인이 한국 출신이라 많은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 한국이 세계적으로 도약한지라 한국의 스탠더드가 세계의 스탠더드가 된 경우가 많아서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작은 손녀 스텔라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한국어를 배우는데 열심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름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근처 초중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지낸 보람이 빛을 발하는 듯하다. 미국 학교가 일찍 여름 방학을 시작하므로 아이들이 서울에 올 때면 한국 학교는 아직 수업 중이었다. 교실에 청강을 허락받아 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던 것이 다행이었다. 어휘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발음만은 한국식인 이유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그 아이는 어쩌면 한국의 대학에 가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부부의 할 일이 더 많아질 테지만 남편은 기꺼이 그 역할을 맡으려고 할 것이다.
 
죽기 전에 할 일 또 하나는 지난 세월 지나면서 신세진 분들을 만나보는 일이다. 옛날 미국에서 살 때, 학생 아파트에서 학위 공부를 같이 하던 교수 한 분의 건강 상태에 관해 들었다. 지병이 악화되어서 매일 같이 투석을 해야 한단다. 일주일에 두 번도 세 번도 아니고 매일이라니.... 안타까웠다. 젊은 시절부터 병약하긴 했지만 이렇게 악화될 줄을 몰랐다. 젊기 때문에 ‘그 동안 완쾌 되었으리라’ 고도 생각했었다. 학교 캠퍼스에 있는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유리창 밖으로는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건만...’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싸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표현하면 뭣하랴. 아름다운 젊음은 이제 먼 곳으로 가 버린 것을....
 
나이 들어가는 지금 해야 할 일은 그 분들과 같은 인연을 될수록 많이 만나는 일이다. 만나서 밥 먹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시간이 되면 차도 마신다. 돈도 많이 안 든다. 내가 보답하고 싶은 분일수록 비싸고 호화스런 음식 같은 것은 원하지 않는다. 소박하게 먹어도 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을 좋아한다.
서울에 가서도 만나지만 이곳 영천에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많다.
 
‘동림원’은 진정으로 우리의 후세를 위한 곳이다. 어린 초중등 학생들이 평소 좋아하는 과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 졌으므로, 먼 곳에서 오는 버스도 정차할 수 있게 주차장이 널찍하다. 나무에 달린 과일들을 보고 기쁨과 희망을 가지는 우리들의 후세가 눈에 그려지지 않는가? 이곳을 만들 수 있게끔 땅을 물려주신 시댁 어른들께 감사하고 그런 용도로 쓰겠다는 발상을 한 남편에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의도에 찬성하고 그 뜻을 실천으로 보여준 백여 명의 후원자가 뒤에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 짝이 없다.

정부나 공공기관으로 부터는 아무런 경제적인 후원을 받지 않았다. 만약 정부나 영천시로부터 한 푼이라도 재정 지원을 받게 된다면 우리 동림원은 의무적인 서류 작성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생은 흘러가는 강물과 다르지 않다. 뒷물줄기는 앞 물줄기를 밀고 내려간다. 구덩이에나 돌 틈에나 잠시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오래 정체한다는 것은 물줄기의 속성에 위배된다. 물은 흘러야 하니까 말이다.

행복하게 밀려가도록 하자. 밀려가지 않겠다고 저항해서 될 일이 아니다. 뒷물이 용이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웅덩이도 메우고 쓰레기도 치워가는 것이 우리 앞서 가는 사람들의 할 일이다.

즐겁게 손에 손을 잡고 피크닉 가듯이 밀려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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