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유사, 폭리 취해 사상 최고 실적 거둬”
정치권, 여야 할 것 없이 정유사에 고통 분담 요청
정유 업계 “횡재세 도입 시 생산할수록 이익 감소”
감산 카드 불가피…기름 값 급등 ‘역효과’ 날 수도

▲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표시된 유가 정보.
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국내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가 이른바 ‘횡재세’를 도입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유 업계의 우려와 불안이 날로 커지는 모습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횡재세는 초과이윤세로,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에 추가로 징수하는 소득세를 뜻한다.
 
민주노총은 최근 유가 폭등으로 인해 건설·기계 및 화물 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벌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탓에 노동자들만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탄했다.
 
민주노총은 “온 나라가 유가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물가마저 폭등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와 달리 정유사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여파로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국내 유가도 덩달아 상승한 바 있다. 이에 정유사들은 괄목할 만한 반사이익을 거뒀다.
 
실제로 올 1분기 국내 정유사들은 1조원을 크게 상회하거나 이에 육박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이 1조6491억원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인 데 이어 △에스오일(S-Oil) 1조3320억원 △GS칼텍스 1조812억원 △현대오일뱅크 8045억원 등이다.
 
민주노총은 “정유사들이 역대급 수익을 거둔 이유는 기름 값 폭등에 따른 재고 이익과 수요 증가에 따른 마진이 폭등했기 때문이다”며 “올 2분기 또한 1분기와 비슷한 수준의 이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재벌들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면서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살피는 정책은 펼치지 않고 있다며 정유사들에게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이달부터 유류세를 법정 최대 폭인 37% 인하하기로 했는데도 정유사들은 리터당 69원만 인하키로 반영해 유류세 인하를 폭리 수단으로 이용했다”며 “그간 국제 유가가 오르면 즉시 소비자 판매가에 반영하고 유가가 내리면 여러 이유를 들어 유가 인하를 늦추거나 부분적으로만 반영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정유사가 가로채 자신의 배를 불린 셈이다”고 비판했다.
 
▲ 이달 25일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에 정유사 대상 횡재세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
▲ 이달 25일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에 정유사 대상 횡재세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

노동계가 날을 세워 정유 업계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앞서 이달 19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정책위원회(정책위) 의장은 “정유사의 과대 이익과 관련해 기금으로 조성할지, 횡재세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번 정유사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청했는데 꼼짝하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며 “과도한 이익을 어떻게 환류하고, 기름 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빨리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유 업계에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고유가에 따른 초과 이익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압박에 나선 것이다.
 
이미 민주당 정책위는 횡재세 부과를 위한 법 조항까지 검토해 둔 상황이다.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 제18조에 따르면 정부는 국제 유가의 현저한 등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게 되는 석유정제업자 또는 석유수출입업자에게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
 
향후 민주당은 정유 업계와 관련 간담회를 갖고, 횡재세 도입, 기금 조성 등을 통한 사회 환류 방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여당도 야당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달 23일 “정부는 세수 부족 우려에도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한 늘렸다”며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주요 정유사들이 밀집한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진=여수시청
▲ 주요 정유사들이 밀집한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진=여수시청

노동계과 정치권이 잇따라 공세를 펼치자 정유 업계는 적잖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정제 마진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 횡재세마저 도입되면 올 하반기 실적이 크게 쪼그라들 수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정유사들은 생산할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탓에 감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공급량이 줄어 되레 국내 유가가 오르는 역효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경유 등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정제 마진으로 대부분의 수익을 창출한다”며 “노동계와 정치권이 주장하는 횡재세의 경우 내수에서 이익을 내는 부분에 적용되는데, 이 부분의 마진은 크지 않아 결과적으론 정유사들의 수익률만 떨어뜨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횡재세가 부과되면 정유사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재고 관리를 멈출 수밖에 없다”며 “이에 오히려 휘발유·경유 가격이 치솟아 국민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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