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영 기자
▲ 오창영 기자
르노코리아자동차(르노코리아), 쌍용자동차(쌍용차), 한국지엠 등 이른바 ‘르쌍쉐’로 일컬어지는 국내 중견 완성차 업체 3개사가 그간 잔뜩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달 르노코리아의 자동차 판매 대수는 총 1만6673대로 지난해 같은달 1만1033대 대비 51.1%나 증가했다. ‘XM3’의 유럽 판매 호조로 수출 물량이 크게 늘어난 것이 실적 개선에 주효했다.

한국지엠의 경우 지난달 2만6699대를 팔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달 1만9215대와 비교해 35.7% 늘어난 수치다. 더욱이 부품 수급 문제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등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일궈낸 결과라 더욱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법정 관리를 받고 있는 쌍용차는 신차 ‘토레스’의 덕을 톡톡히 봤다. 쌍용차는 토레스를 앞세워 지난달 내수 6100대, 수출 4652대 등 총 1만752대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부진을 겪었던 르쌍쉐는 이번 판매 실적 개선을 시작으로 부활을 노리는 모양새다.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들 3사 모두 미래 비전을 앞다퉈 발표할 뿐만 아니라 신차 출시도 서두르고 있어서다.

르노코리아는 올해 6월 10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중장기 신차 계획인 ‘오로라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르노코리아가 4년 이후의 중장기적 생산·판매 계획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프로젝트에 따르면 당장 올 하반기부터 국내 자동차 시장 공략에 돌입한다. 르노코리아는 주력 차종인 XM3의 하이브리드 모델 ‘XM3 하이브리드’를 연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2024년엔 중국 길리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볼보 CMA 플랫폼 기반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기로 했고, 2026년 순수 전기차(BEV)도 공개할 방침이다.

한국지엠은 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토대로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CUV 신차 등 수출 전략 차종을 집중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GM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모델인 신형 CUV를 2023년부터 창원공장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최근엔 대형 픽업트럭 GMC ‘시에라’도 국내에 선보였다. ‘찐 미국차’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또 쉐보레 신형 ‘이쿼녹스’를 출시해 ‘타호’, ‘트래버스’로 이어지는 SUV 풀라인업을 완성했다. 2025년까지 GM 브랜드 산하의 10개 차종의 전기차를 국내에 출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쌍용차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전략 차종인 토레스를 안정적으로 양산하는 데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토레스는 출시 3개월 만에 사전 계약 물량 5만대를 돌파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에 안정적인 양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한 쌍용차는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7일까지였던 하계 휴가 기간 동안 주말 특근을 실시해 추가 생산에 돌입했다. 지난달 11일부턴 기존 1교대에서 2교대로 전환하는 등 토레스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르쌍쉐가 재기를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니 이토록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수입차 브랜드에 밀려 외면받았던 르쌍쉐가 다양한 신차를 앞세워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서다. 이에 잃었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평가도 제기된다.

그러나 친환경차 시대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뒤따른다. 르쌍쉐 역시 전 세계적인 전동화 전환 추세에 발맞춰 전기차를 출시했으나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르노코리아는 ‘조에’와 ‘트위지’를 선뵀다. 이 중 2020년 8월 출시된 조에는 같은해 193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774대가 팔렸고, 올 상반기엔 404대가 판매됐다. 총 누적 판매 대수는 1371대로, 한달 평균 약 60대만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550대가 판매된 트위지는 △2020년 855대 △지난해 302대 △올 상반기 112대 등 갈수록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르노코리아는 조에와 트위지의 국내 영업점 판매를 중단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8월 ‘볼트EV’와 ‘볼트EUV’의 사전 계약을 시작했으나 전기차 배터리 화재로 인한 리콜 이슈와 직면하면서 출고를 중단했다. 이에 올 상반기 볼트EUV의 판매량은 81대에 불과했다. 볼트EV는 단 1대도 판매하지 못했다.

쌍용차는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와중에도 ‘코란도 이모션’을 출시하며 전동화 전환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코란도 이모션 출시 직후 전기차 배터리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서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

코란도 이모션의 사전 계약 대수는 3000대 수준이었으나 현재까지 출고된 차량은 108대에 그친다. 이에 올 2월 쌍용차는 전기차 배터리 수급 문제를 놓고 LG전자와 협의에 나섰으나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르쌍쉐가 크게 부진하고 있는 현 상황은 이들 3사의 장밋빛 미래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차 시대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실로 매섭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29만8633대로 집계됐다. 올 6월 기준 이미 29만대를 넘어선 만큼 이달에는 누적 30만대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인지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차종·가격 등을 다양화한 전기차 모델을 앞다퉈 출시하며 르쌍쉐를 크게 앞서 나가고 있다. 아이오닉5로 국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은 다음달 아이오닉6를 선뵈기로 했고, 기아는 EV6의 고성능 모델인 EV6 GT를 공개할 계획이다.

수입차 시장 1·2위를 다투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전기차를 내놓는다. 올 하반기 BMW는 7시리즈의 완전 변경 모델 i7을, 벤츠는 EQE를 출시키로 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전동화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르쌍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현재의 전기차 라인업으로는 추후에도 국내 소비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르쌍쉐가 내놓은 전기차 모델들이 동일 차급의 경쟁 모델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탓이다.

르쌍쉐는 후발 주자인 만큼 선도 업체들이 출시한 차량보다 더 매력적인 전기차를 선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경쟁사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나 이미지도 구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친환경차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 르쌍쉐의 전기차를 빠른 시일 내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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