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물가 충격에도 갈 데까지 간다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역대급이라는 태풍 위력에 떼죽음 치르고 농수산물 등 생필품값이 폭등하는 와중에 추석을 넘겼다.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자주 들어온 여야 정치권이 긴장할 만한데 들리는 소식은 식상하다 못해 귀를 막고 싶은 진흙탕 싸움 속보들이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여야 거물급 인사들이며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까지 끌어들였다.
 
이준석 전 대표는 성상납 관련 스캔들로 공방을 벌이다 송사에 말려 당의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당원권 정지 징계받았다. 별로 떳떳하지 못하고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닌데 벼랑 끝에 매달린 이 전 대표는 전가의 보도처럼 ‘가처분신청’을 내세우며 험담에 가까운 소회를 허구한 날 쏟아낸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곧바로 6·1 재보선에 뛰어들어 국회에 입성한 이재명 대표는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정치판 싸움의 한복판에 나섰다. 웬만하면 당당하게 검찰 소환에 응해 소신을 펴는 방식이 나아 보일 듯한데 정부 여당과 연일 치고받는 전면전을 택했다. 김건희 여사는 대선 운동 때 이미 노출된 논문표절 등 의혹이 다시 도마에 올라 정치공세 표적이 됐다. 민주당은 이 대표 기소에 맞서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했다.
 
지상파와 종편 등의 보도 및 논평은 짜증나는 소식을 부풀려 소음을 키우는 격이다. 여야 정치권에서 맴돌다가 평론가로 변신한 인사들이 일부는 교수 또는 민간연구소 대표 직함을 달고 패널로 나와 정치권에 치우친 논리를 반복한다. 기계적 중립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여야 양측을 대변하는 평론가들을 내세운 논평은 서로 모순되는 억지 주장을 교대로 틀어대는 확성기에 불과하다.
 
태풍 힌남로가 남부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7명이 숨지고 주택과 산업단지, 농경지가 물에 잠겨 포항제철소까지 가동이 중단되는 엄청난 피해를 불렀다. 포항은 기계 조선 자동차 등 국내 산업의 근간인 제철소가 처음 들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견인해온 상징적인 곳이다. 그러나 태풍이 한반도를 거쳐 가는 길목에 위치해 인근 경주와 함께 자주 물난리를 겪어 자연재해가 막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주민들과 포항시는 그동안 태풍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여러 차례 정부와 정치권에 건의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포항시는 2016년 국토교통부가 ‘댐희망지 신청제’를 도입하자 냉천 및 상류 신광천 주변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항사댐 건설을 건의했다.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오어지 상류에 높이 52m, 길이 140m, 저수량 530만t 규모의 댐을 만들어 냉천 범람을 막아보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댐 위치가 활성단층인 양산단층과 직각으로 놓이게 돼 매우 위험하다”고 반대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물관리를 맡은 환경부도 댐건설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8년 말 오천읍 인근 주민 1만2300명이 작성한 건의서를 환경부에 전달했으나 진척이 없어 끝내 무참한 떼죽음을 초래했다.
 
정치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민생을 돌보겠다고 늘 다짐한다. 그런데 실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은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고 진영대립을 이끌어 승리하겠다는 메시지와 다름이 없다. 활성단층을 거론한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해 정치권은 함구할 게 아니라 실제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과학적 검증을 거치도록 합리적 방안을 이끌어야 했다. 환경부도 전문가 중심의 지질조사단이라도 꾸려 진위를 검증해야 할 터인데 혹시 모를 일에 나서지 않겠다며 몸보신에 치중했다.
 
이명박 정부 때 건설한 4대강 수중보를 놓고도 찬반 대립만 이어질 뿐 과학적인 검증과 합리적인 대책에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수중보가 4대강 수질을 악화시켰다는 이유로 보해체 및 상시개방을 추진했고 주민들은 지하수위 저하 등 물부족을 우려해 반대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문 정부가 법적으로 폐기된 평가 기준을 활용하는 등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편향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는 의견을 환경부가 감사원에 냈다고 한다.
-국민 분노 어디로 향할지 장담하기 어려워-
 
기후환경변화로 폭우와 태풍, 가뭄, 냉해가 극심해지는 기상이변 속에서 정치권은 아직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식의 이분법에 빠져 이념대립을 부추기는 큰형님 행세를 하는 중이다. 원·달러 환율과 무역적자가 경제에 충격을 던지고 물가가 마구 뛰는 시기에 민생을 위해 나서기는커녕 서로 흠잡을 곳만 애써 찾아 싸움을 키운다. 그 와중에 7월과 9월 주택, 토지분 재산세가 잇달아 부과됐다. 여야는 지난 대선에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나 가계를 압박하는 재산세 중과는 여전하다.
 
새 정부는 여소야대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야당은 검찰의 이 대표 기소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여당은 신물 나는 내부 분탕질, 민주당은 대표 감싸기에 빠져 국민은 안중에 없다. 민주당은 정부 여당이 무능하고 불안하다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 다수당 횡포를 부린다고 공격한다. 국민은 물가 폭등에 고금리, 재해까지 겹쳐 고통을 겪는데 정치권의 패거리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 국정이 힘을 받지 못하는 형세다. 당장은 정부 여당의 역량을 걱정하는 여론이 우세한 듯 보이지만 야당의 발목잡기가 지속되면 국민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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