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영 기자.
▲ 오창영 기자.
“제2의 요소수 대란이 불거질 지 모른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 수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리튬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심히 염려했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리튬 수요 전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 중국은 2020년 우리나라의 리튬 수입국 1위에 오른 뒤 현재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배터리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석: 리튬’ 보고서에 따르면 올 1~7월 대(對)중국 리튬 수입 비중은 64%로 집계됐다.

2020년 47% 수준이었던 대중국 리튬 수입 비중은 지난해 59%로 증가하더니 올해는 60%선을 껑충 뛰어 넘었다. 올 하반기 수입 물량에 따라 해당 비중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수산화리튬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 1~7월 대중국 수산화리튬 수입 비중은 91%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69% 급증한 14억7600만달러(약 2조1269억원)에 달한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주로 만드는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다. 최근 들어 국내 업체들이 에너지 밀도가 높은 하이니켈 배터리의 생산 비중을 더욱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 수산화리튬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커질 게 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 관계자의 걱정을 기우로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요소 생산·수출을 통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요소수 품귀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특히 요소 수입량의 97%를 중국에 의존해 온 우리나라의 타격은 불가피했다. 결국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내 물류·운수 업계의 발이 묶이면서 국내 전 산업계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요소수 부족난이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서 파생됐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리튬도 언제든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제2의 요소수 대란이 촉발될 가능성이 지척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무협 역시 중국에 편중된 리튬 공급망이 향후 수급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내 기후 변화나 양국 간 정치 갈등이 생길 경우 리튬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지난달 중국 쓰촨성에 닥친 가뭄과 정전 등 악재로 인해 리튬 공급의 20% 이상을 책임지던 현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이에 공급량이 크게 줄면서 리튬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이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결단코 유익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갈등을 겪던 2010년 중국은 희토류를 앞세워 일본을 정치적으로 압박했다. 희토류는 전자 제품 생산을 위한 필수 소재다. 당시 일본은 희토류의 90%가량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만약 우리나라와도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은 리튬을 통해 강한 압박에 나설 지도 모를 일이다.

리튬이 제2의 요소수 대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배터리 핵심 소재의 수요는 급격히 높아지는 모습이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어서다.

올해 우리나라는 ‘전기차 30만대 시대’를 열었다. 국토교통부(국토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순수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32만8267대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달 기준 19만1065대와 비교해 무려 71.8%(13만7202대) 증가한 수치다.

전기차의 인기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 봐도 무방하다. 시장 분석 업체인 블룸버그NEF는 올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이 처음으로 1000만대를 넘어 105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판매량 660만대 대비 약 60% 증가한 것이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은 후방 산업인 배터리 산업의 몸집을 덩달아 키우고, 전기차에 탑재하기 위한 배터리 수요 증대는 핵심 소재 확보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산업 생태계에 만연한 중국에 대한 의존은 리튬 수급 위기를 현실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배터리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 리튬 관련 수입 품목을 수산화리튬, 탄산리튬, 스포듀민(리튬 공급원이 되는 광석광물) 등으로 다양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수입선도 다변화하는 중이다. 그 결과 일본의 대중국 리튬 수입 비중은 56%에 머문다. 나머지 44%는 칠레, 미국, 아르헨티나 등에서 조달한다.

일본이 중국 의존도 감소를 위해 발빠르게 대처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눈 뜬 장님인 양 서서히 몸집을 키우는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되레 중국에 더 의존하고 말았다.

위기를 느낀 것일까.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배터리 소재 공급망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온은 지난달 28일 호주 글로벌리튬과 ‘리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SK온은 글로벌 리튬이 소유·개발 중인 광산에서 생산되는 스포듀민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22일엔 LG에너지솔루션이 캐나다 광물업체 일렉트라, 아발론, 스노우레이크와 각각 업무협약을 맺었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황산코발트·수산화리튬 등을 공급받기 위해서다.

LG엔솔은 내년부터 3년간 일렉트라로부터 황산코발트 7000톤을 공급받기로 했다. 일렉트라는 북미 지역에서 황산코발트를 정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급 업체다. 또 2025년부터 5년 간 아발론이 생산하는 수산화리튬 5만5000톤, 10년 간 스노우레이크가 생산하는 수산화리튬 20만톤을 각각 공급받을 예정이다.

올 6월에는 미국 컴퍼스미네랄과 대규모 탄산·수산화리튬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LG엔솔은 2025년부터 7년 간 컴퍼스미네랄이 생산하는 친환경 탄산·수산화리튬의 40%를 공급받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K-배터리 업체들이 리튬 공급망 강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산업 생태계가 직면할 수 있는 수급난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정부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해외 광물 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배터리 핵심 소재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투자는 오히려 큰 폭으로 감소해 왔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해외 광물 자원 개발 투자 규모는 2014년 19억2800만달러(약 2조7782억원)에서 2020년 2억7200만달러(약 3920억원)로 무려 85.9% 급감했다.

해외 광물 자원 개발 사업 역시 크게 축소됐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신규 사업은 24건에 불과하나 종료 사업은 103건으로 5배나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배터리 산업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야 할 정부가 스스로 공급망 리스크가 생기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 온 셈이다. 이제라도 해외 광물 자원 개발에 투자를 아끼기 않아야 한다.

수입선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정부는 호주와 아르헨티나 등 중국 외에서 리튬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유망한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 친환경 리튬 채굴 및 제련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하는 것도 좋다.

그래야만 자원 무기화 시대 속 배터리 핵심 소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2의 요소수 대란에 적극 대응할 수 있다. 이같은 위기를 딛고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도록 정부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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