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모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함께 걸으며 환담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모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함께 걸으며 환담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채 100일도 안 되는 시간동안 국내 기업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부동산PF발 기업어음과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어 자금시장이 경색돼 곤혹을 겪었다면, 이번달에는 해외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수주 소식에 고무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이번 수주 낭보는 사우디까지 이어졌다.

G20을 개최됐던 인도네시아에서 현대차그룹은 신수도 미래항공 모빌리티(AAM) 인프라 시스템 구축을 맡게 됐고, LG CNS는 신수도 투자청과 스마트시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또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지난 17일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사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해욱 DL 그룹 회장 등과 1시간 40분 가량 차담회를 가졌다.
 
그는 지난 2019년 방한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와도 한차례 만난 적이 있어 이번 방한에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실제 빈 살만 왕세자 방한 전후로 ‘사우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네옴시티’ 수주 관련 소식도 쏟아졌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8일(현지시간)부터 고속철도 터널 공사에 착수했고, 방한 시점에 맞춰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그리고 롯데건설은 에쓰오일이 발주한 ‘샤힌 프로젝트’의 EPC(설계‧조달‧시공) 업체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와 별도로 삼성물산은 철강 모듈러 방식으로 임직원 숙소 1만 가구를 건설하는 네옴 베타 커뮤니티 사업을, 대우건설은 사우디 건설사 알파나르와 가스와 석유화학 프로젝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각각 체결했다.
 
또 이번 차담회에서 삼성은 AI, 5G 무선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제공하는 협력 방안이 오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와 추가 계약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SK는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 대한 추가 투자를 논의한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때와 비슷하게 AAM 생태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높다. 한화는 김동관 부회장의 주력 사업인 태양광 사업에 대해, CJ는 문화 교류 등을 검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연이은 수주 소식과 함께 추가 사업 수주 가능성에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안도감을 표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이어진 일련의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쏟아진 바 있다.
 
우량 기업의 회사채가 유찰이 되고, 일부 건설사는 부도설 홍역까지 치러야했다. 긴급하게 정부 차원에서 개입이 이뤄졌지만 자금 경색은 더욱 심해져 CP금리는 5.3%까지 급등했고, 주요 대기업들도 7~8%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대외적인 환경조차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주요 경제단체들이 해당 법안에 대해 한‧미FTA 규정을 위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며 폐지나 유예를 요청했는데, 실질적으로 이뤄질 지는 아직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물론 이번에 대규모 수주의 신호탄을 쏜 인도네시아나 앞으로의 ‘제2의 중동붐’이 될 사우디아라비아도 현재 단계에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시선이 많이 혼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협력 사업을 추진한 몇몇 국내 대기업들이 실증 단계에서 사업을 중단한 적이 있고, 미국내 IRA와 같은 현지 제도나 법령이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쇼잉(showing)이 아닌 핀셋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원 팀 코리아’만 외치는 것에는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당장 풀어야 될 숙제로 본 것은 ‘사우디제이션’이다.
 
사우디제이션은 고용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외국기업에 대해 사우디인과 외국인 고용인원 수의 차이만큼 수수료를 부과하는 자국민 의무고용제도이다.
 
해당 제도로 인해 일부 국내 건설사들은 숙련공 확보에 어려움을 겪거나, 건설 비용이 증가하는 피해를 입은 바 있어 전문가들은 해당 제도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로 보고 있다.
 
또한 사우디 쇼크도 조심해야 될 문제이다.
 
국내 기업들이 1년 동안 공을 들여 입찰에 참여한 4조원 규모의 자프라 플랜트 사업이 지난 2020년 저유가 장기화, 코로나19 확산 등의 여파로 취소된 바 있다.

또 설계부터 구매와 시공까지 자국에서 해결하면 대규모 발주를 내겠다는 사우디 측의 공언에 현지 법인까지 설립했지만, 실질적인 발주까지 이뤄지지 않아 현지 법인이 철수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전문가들은 다양한 채널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정부 차원에서 섣부른 투자 예측 발표가 아닌 신중한 태도로 발표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내용을 계속적으로 언급하면 기업들의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후 여러 이유로 수주 실패시 기업의 신뢰도 하락 문제까지 번질 수 있으니 미리 축배를 꺼내들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돌고 돌아, 현재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부 차원의 핀셋지원이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할지가 정부 차원에서 남은 문제인 것이다. 물론 당장은 여러 회의도 개최하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이것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더 이상 민간으로 떠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민간으로 떠넘긴다면 ‘도대체 국가는 왜 존재하는 지’를 묻는 목소리가 많아 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쇼잉’에 불과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성과라고 자부했던 것을 모두 ‘쇼잉’이 되어버리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남은 선택지는 ‘제2의 중동붐’을 일으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라는 것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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