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미 FTA 협상 시작 위해 내주고 양보만 거듭

지난 18일 한·미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이 타결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되게 된 것에 대해 야당과 농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통합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에 대해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오로지 미국 의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도록 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을 맞이해 미국에 조공을 바치듯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했다”며 정부여당을 맹공격하고 있다.

물론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하나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한 정부에 대해서는 야당뿐만 아니라 농민단체와 일반 국민들도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번에 정부가 보여준 형편없는 수준의 협상력과 상식에서 벗어난 협상 자세는 비단 이명박 정부만의 모습이 아니고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된 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도 결코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01년 1월 1일 수입이 자유화됐고 지난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전면 금지됐다.

그러던 것이 당시 농림부는 지난 2006년 1월 13일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를 위한 한·미간 위생 조건 협상이 '도축월령 30개월 미만의 뼈를 제거한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것으로 타결됐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할 것임을 밝혔다.

적어도 당시에는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있는 나라의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미국의 광우병 방지 대책이나 시스템이 더 나아진 것도 아니었는데 정부는 전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한 것이다.

더구나 그 해 3월 미국에서 또 다시 광우병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농림부는 미국 광우병 감염소의 나이 확인을 위해 조사단을 구성해 미국 현지에 파견까지 한 뒤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결정하는 상식 밖의 행위를 하기도 했다.

당시 농림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내세운 논리는 광우병 감염소가 미국에서 '되새김 동물에 대한 되새김동물사료 금지원칙'이 효과적으로 시행된 지난 1998년 4월 이전에 출생한 소로 판명됐다는 것.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해도 수입 재개 강행

하지만 '되새김 동물에 대한 되새김동물사료 금지원칙'은 영국이 88-90년까지 시행한 후 2만 7000마리의 신규 광우병 소가 발생해 폐기된 정책이었다.

이는 지난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즉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 것과 명확히 대조된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스크린 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 재조정,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완화).

지난 2006년 2월 9일 발간된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2006년 1월 한국정부는 (스크린 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 재조정,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완화) 네 분야 모두에서 양보의사를 전달해 왔고 양측은 다음 달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게 됐다”며 우리 정부가 4대 선결조건을 먼저 일방적으로 양보해 한ㆍ미 FTA 협상이 시작됐음을 분명히 했다.

이 보고서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월 18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가진 TV 신년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도 FTA를 맺어야 한다”며 “조율이 되는대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당시 외교통상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Rob Portman 미 무역대표는 우리 시간으로 지난 2006년 2월 3일 오전 5시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한·미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즉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발표한 시점과 한·미 FTA 협상 시작 시점이 정확이 일치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 정부는 한·미 FTA 4대 선결조건을 거의 그대로 수용해 왔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6년 3월 7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에서 당시 이해찬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스크린쿼터를 현행 1년의 5분의 2(146일) 이상에서 5분의 1(73일) 이상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한 지난 2005년 환경부는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현행보다 강화하는 신규기준을 만들었는데 그 해 12월 환경부는 갑자기 입장을 바꿔 연 1만대 이하 자동차 판매자들에게는 강화된 배출가스 허용 기준 적용을 오는 2008년 말까지 유예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자동차를 연 1만대 이하 판매하는 한국 자동차 업체는 없는 실정. 사실상 미국 자동차 업계를 위해 국민의 환경권까지 희생해가며 유예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4대 선결조건 중 유일하게 수용되지 않은 것은 지난 2006년 5월 3일 당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7월 14일 당시 한ㆍ미 FTA 제2차 공식협상에서 미국측은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선결조건 위반임을 항의하며 가차 없이 협상을 결렬시키기도 했다.

또한 미국이 우리 정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수용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비례대표, 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 2006년 8월 14일 'CBS 뉴스레이다'에 출연해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의 입장에서 포지티브 리스트는 쟁점이 아니고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 설치, 특허연장 등이 노림수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미 FTA 협상 결과 의약품 가격 협상 이의신청 기구 설치가 관철됐고 의약품 특허연장도 허가-특허 연계라는 형태로 관철됐다.

이렇게 정황상 우리 정부가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 분명한데도 당시 참여정부는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발뺌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현재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통합민주당도 적어도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우리 정부가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도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오로지 한·미 FTA 협상 시작일 뿐이었다.

4대 선결조건 수용 대가는 한·미 FTA 협상 시작뿐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도저히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미 FTA협상 4대 선결조건은 우리 정부가 잘만 활용하면 협상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협상 카드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협상카드를 전혀 활용하지도 못한 채 오로지 한·미 FTA 협상 시작을 위해 미국에 내준 것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협상카드는 사실상 없었다.

이렇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졸속적인 한·미 FTA 협상 시작을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참여정부가 재개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미 FTA 성사를 목표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로서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미국의 광우병 방지 시스템이나 대책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광우병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관철시켜야 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등은 그렇게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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