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투데이코리아 = 강승민 리포터]지난 20년간 영화평론가로 활동해 온 정성일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고유명사로서 한국영화계에 통용된다. “한국의 장 미셀 프루동(까이에 뒤 시네마 前 편집장)”, “매 순간 모든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대결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 “인터넷 팬클럽을 가진 평론가 1호” 등 그를 일컫는 수식어도 다양하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잠시 펜을 놓고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메가폰을 들었다. 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인 정성일의 장편 데뷔작 '카페 느와르'가 그것이다.

그가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인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래서인지 9일 첫 상영을 앞둔 해운대 상영관에서는 영화팬들뿐만이 아니라 낯익은 영화감독들과 제작자들이 그의 감독 데뷔작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10일 상영에서는 평소 공식적인 자리에는 잘 참여를 하지 않는 홍상수 감독까지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가히 영화의 기대치를 짐작할만하다.


영화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원작으로 중학교 교사 영수(신하균)와 그를 둘러싼 네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21세기 서울의 풍속화'이다. 영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유부녀 미연(문정희)과의 헤어짐을 견디다 못해 방황하고 괴로워한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동료교사 미연(김혜나)과 잘 지내는 듯 했으나 결국 그녀의 애정을 외면하고 청계천에서 선화(정유미)를 만나 구원을 바라지만 버려지고, 나중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속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흡입력을 지니지 못하고 감독의 의지대로 파편화되어 나타난다. 역사는 주인공들의 육체위에서 현실과 공존하고 있고, 영화적 시간에는 그 이외의 것들이 침입하고 있다. 흑백과 컬러, 텍스트와 음성이 미묘하게 차이를 생산해내면서 결국 하나의 거대한 콜라주로서의 영화가 된 '카페 느와르'는 그 자체로 원(圓)처럼 어느 방향에서 들어가더라고 동일한 완전체의 영화가 되어버렸다.

'관습적인 영화 만들기가 이미 현실의 문제를 지나치게 낭만화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은 '카페 느와르'에서 새롭게 창조된 서울의 모습을 통해 올바르게 대답되어진다. 재창조된 영화적 시공간은 이것이야 말로 서울의 표면과 시간을 정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기에는 형식적 특수성이 한몫을 한다.

영화의 개별 쇼트들은 대다수 비(非)인칭 시점이며, 참조와 각주들이 어지럽게, 하지만 나름의 질서 속에서 섞여있다. '괴물', '신성일의 행방불명', '올드보이' '행복'과 같은 한국영화들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고 사라진다. 몇몇 장면들은 '언급'이 아닌, 직접적인 '삽입'의 형태로 영화에 나타나는데, '극장전'의 한 장면과 '100분토론', 'KBS 새해맞이 타종식 생중계' 장면은 영화적 시간에 슬그머니 침입하여 그대로 흘러간다. 영화적 시간에 현실의 시간이 끼어들어 기묘한 동거를 하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편지형식으로 등장하는 '텍스트'는 그것을 읽는 음성언어와 불일치를 겪고, 원작소설의 문어체 대사가 현대의 배우들의 입으로 읊조려지면서 서울이라는 곳은 역사와 현실이 공존하는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또한 남산타워, 광화문, 청계천과 같은 서울의 명소는 비(非)인칭으로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영화로의 감정이입을 제어하게 만든다. 아예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갈려서 중반에서 다시 시작한다.

'카페 느와르'는 이러한 형식적 특수성을 통해 우리 개인을 둘러싼 정보와 이미지들이 가져다주는 '사실'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서울과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진실의 개념은 삶의 허구성과 끊임없이 싸우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연관된다. 홍 감독의 영화가 '무(無)형식의 형식성'을 통해 미학의 허구성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면, 정성일의 영화는 오히려 인용과 각주, 영화적 자의식이 내재된 형식미를 통해 영화와 삶의 허구성과 싸우고 있다. 정성일은 도리어 지우면서 순수해지기 보단, 덧입히면서 그것의 양태를 지켜보고 그 안에서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는 형식적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평에 있어서의 한계점이란 그것을 글로 씀으로써 이미 과거의 것이 되고 일종의 낭만화가 된다는 것이라면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 자신의 글쓰기를 뛰어넘는 때 묻지 않은 어떤 '체험' 그 자체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미학'과 '반(反)미학', '허구와 현실', '역사와 실존'을 두고 치열한 그만의 세계를 재구성해 나간다. 결국 '카페 느와르'는 영화로서의 미학이 가진 윤리적 긴장과, 수사로 점철된 우리 세계의 문제점들을 현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자 일종의 감독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뒷얘기

영화 상영이 끝나고 난 후 반응은 대단했다. 상영관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에서는 거침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 속 내용을 근거로 한 세세한 질문들에서부터 영화감독에게 퍼붓는 질문들의 강도는 기대 이상으로 알찼고 또 그 만큼 풍성했다.

한 관객이 “청계천에서의 롱테이크 장면이 너무 낭만적이다. 영화 자체가 그것을 낭만화하면 안되는데 이 장면은 전체적인 맥락에 어긋나는 것 같다'라고 묻자 감독은 ”그 장면에서는 청계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딱 이까지만 알게끔 하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또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들어오자 정성일은 재빨리 “나는 살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네 인생이 결코 농담이 아니듯이 영화 또한 소비하듯 만들고 싶지는 않겠다, 라는 뜻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인 '카페 느와르'는 부산영화제에서 15일 마지막 상영을 가진 후 올해 말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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