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칼럼] 야당까지 가세한 포퓰리즘
2020-09-23 권순직 논설주간
예산 규모로만 보면 큰 쟁점이 아닐 수 있으나 논란이 많았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적은 액수지만 13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겠다”면서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말했다.
지원 액수가 별거 아니기도 했지만 정부의 생색에 일차 문제가 제기됐다. ‘국민 세금으로 자기가 생색내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 여당 유력인사들까지 “승수효과가 없다” “그 돈으로 차라리 와이파이 망 확대 사업에 투자하자”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신비 지원 방침이 확정되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원 대상에서 빠지게 된 35세 이상 65세 미만의 국민에게는 ‘주었다 빼앗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세금은 가장 많이 내는 세대에 대한 푸대접이라는 불만이다. 대통령의 ‘인심 쓰기’가 멀쭘해졌다. 민망스러운 일이다. 이들에게 대통령이 사과라도 해야 할 판이다.
정부 여당이 지난 총선에서 재난긴급지원금 지급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기회만 있으면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워 포퓰리즘적 지원을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 야당까지 가세하는 분위기다. 김종인 국민의 빛 대표가 기본소득 지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자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퍼주기 식 재정의 결과는 국가 파산
포퓰리즘이 만연하면 어찌될 것인지는 많은 외국의 사례가 생생하다.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유럽의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자” 1981년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취임 일성이었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줍시다”라는 선언과 닮았다.
당시 국민 1인당 GDP가 세계 4위였던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까지도 부유한 나라 20위에 들 정도로 무너질 수 없는 나라였다. 무분별한 포퓰리즘의 처절한 결과가 오늘의 베네수엘라 경제의 실상이다.
그 이후 그리스와 베네수엘라 두 나라는 경쟁적인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쏟아내면서 국가부도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포퓰리즘은 마약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세력에게 포퓰리즘은 집권을 위한 최고의 처방이며, 여기에 맛들인 국민들 또한 달콤한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우리가 이를 경계하는 이유다.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은 555조8000억원 규모다. 이중 89조7000억원은 국채 발행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갈수록 둔화하고, 세수는 예산팽창을 메꿀 수가 없는 상황이다.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 강화에 주력해야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국가채무 비율은 2005년 25.9%에서 2017년 36%, 내년엔 46.7%로 높아진다. 2022에는 50%를 넘어선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 인구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간다면 국가채무비율이 2030년 77%, 2045년 99%까지 급상승할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가파른 채무비율 상승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다. 수 십 년간 지키려고 노력해온 채무비율 40%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이를 지키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을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우리나라만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
이 정부 경제 핵심 브레인들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보여진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에서는 채무비율 40% 마지노선은 무너졌고, 얼마로까지 높아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국가채무비율이 얼마가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국가 빚이 감당수준 이상으로 늘어날 때 자국 통화를 늘려 대처할 수 있는 미국 일본 영국 같은 이른바 기축통화국은 국가부도 위험에 내몰릴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非기)축통화국은 국가채무가 급증해 한계점을 넘어서면 국가신용도 추락과 환율불안, 이에 따른 외화조달 비용 급증 등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퍼주기 식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다가 국가부도를 맞은 그리스 베네수엘라가 그 예다.
대부분 국가들은 과도한 국가 빚 증대를 막기 위해 재정준칙을 마련해 운용한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재정을 운용하여 부채비율이 급증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재정준칙을 가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뒤늦게나마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 중이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준칙 도입과 함께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며 도입에 반대하는 여당을 설득 중이다.
그러나 유연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남용된다면 본래의 준칙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함께 엄격한 운용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많다.
물론 천재지면에 버금가는 현재의 코로나 위기 상태에서 재정의 역할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고 생산성이 낮은 포퓰리즘적 재정은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정부 지출을 늘리더라도 민간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쪽으로 투자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장 인기 얻기에 좋은 재정 살포보다는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공공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당장 펑펑 써놓고 미래세대가 이를 감당토록 한다면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