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군 성추행 사건’ 가해자 징계 안 한 이유..“최종 판결 나와야 가능”

'블랙박스 영상' 피해자 본인이 직접 군사경찰에 제출

2021-06-03     오혁진 기자
▲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사건의 피의자 장모 중사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투데이코리아=오혁진 기자 | 공군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회유와 압박을 시도한 상관들이 보직 해임된 가운데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가 없었던 이유는 황당했다. “혐의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군사경찰의 부실 수사와 늑장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만큼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일 국회 국방위원회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모 중사는 타 부대 상사인 A 부사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이를 상관에게 알렸음에도 무마됐다.
 
이 중사 유족 측은 이날 구속(2일)된 가해자 외에 1년 전 회식자리에서 이 중사를 성추행한 A 부사관을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장을 냈다.
 
유족 측 변호인인 김정환 변호사는 “다른 가해자에 의한 강제추행이 1년 전쯤 있었고 그때도 상부에 보고했음에도 같은 상관에 의해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중사 아버지는 “그쪽(직속상관)을 통해서 (가해자가) 징계를 받으면 연금도 다 받지 못하고 빨간 줄이 간다며 합의를 종용했다”고 설명했다.
 
공군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장모 중사에 대해 사실상 ‘늑장 조치’를 취했다. 이 중사가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장 중사의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받은 데 이어 직무배제 등의 징계를 하지 않은 이유는 황당했다.
 
공군 관계자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해당 혐의가 법적으로 최종 판결이 났을 때 판결된 내용을 바탕으로 징계한다”며 “해당 사건을 인지한 즉시 군사경찰에서 수사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군사경찰이 즉시 수사에 나섰지만 상당히 부실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음성이 담긴 차량 내 블랙박스 파일을 이 중사 본인이 직접 군사경찰에 제출한 것이다.
 
특히 군사경찰은 장 중사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와 휴대폰 압수수색 등을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공군은 피해자 사망 후에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다.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된 후 국방부 조사본부에 단순 변사로 보고한 것이다. 공군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 외에는 성추행 피해 사실과 가해자에 대한 조사에 대한 점은 보고 내용에서 빠트렸다.
 
군 검찰단 출신 한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해자 본인이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취해진다”라며 “혐의에 대한 최종 판결이 있어야 징계 처리가 가능하다는 건 원론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가해자인 장 중사가 제대로 된 징계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2013년 유사 성추행 사건 당시 가해자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