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계부채 진범 찾기보다 중요한 ‘정책 공조’
2024-01-24 서승리 기자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역대급으로 증가한 가계부채를 두고 은행들이 출시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지목했고, 일부 은행들은 해당 상품을 조기에 종료하거나 조건을 변경하는 등 당국의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사회적으로도 가계부채 증가의 진범이 은행이란 분위기에 치중되던 때, 일각에서는 정책금융상품 중 하나인 ‘특례보금자리론’을 언급하며 당국이 은행에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지난해 주담대는 45조 1000억원 증가하며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다만 은행 자체적으로 내놓은 주담대는 4조 2000억원 감소한 상황이다. 이와 반면 지난해 8월까지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의 규모는 31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가계부채 확대의 진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특례보금자리론’이 가입 연령이 34세 이하인 점과 고정금리를 적용하는 반면, 은행들의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변동금리에 나이 제한도 없다는 부분 등을 내세우며 전면 반박에 나선 상황이다.
그렇지만 가계부채 증가의 진범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것에 앞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22년 9월 정책금융상품 ‘안심전환대출’을 출시했으나 높은 기준 요건으로 인해 흥행에 실패하며 서민 금융 지원을 위해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안심전환대출’과 ‘적격대출’을 보금자리론에 통합한 특례보금자리론을 운영할 계획을 발표했는데, 앞선 사례의 실패를 의식한 탓인지 정부는 소득 조건을 없애는 등 지원 대상 기준을 크게 완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까지 공급된 특례보금자리론의 규모는 31조 원에 달하며 이는 결국 가계부채 확대의 주 요인으로 작용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신생아특례대출과 청년주택드림대출 등 정책금융 상품 출시를 준비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일각에서는 ‘빚투’, ‘영끌’이 다시 재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이 지난 기간 기준금리를 3.5%까지 끌어올리며 가계부채 디레버리징 환경을 조성하려 했지만, 금융당국의 정책과의 시너지는커녕 가계부채를 통제를 위한 정책은 서로 엇갈리며 공회전만 한 꼴이 되어버렸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통상 기준금리의 결정은 가계부채 외에도 여러 가지 거시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해 결정하는 요소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은 가계부채를 높은 순위에 두고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통화정책방향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고금리 기조를 장기적으로 가져감으로써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기대 심리를 줄여주는 것이 가계부채가 늘어나지 않게 하는데 정책금융 만큼이나 중요한 팩터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는 등의 고금리 기조 유지를 통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가계부채 조절을 위한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해왔다.
최근 5대 금융지주도 올해 가계대출 경상성장률 수준 이내에서 2%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정부와 금융당국도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을 줄이는데 방점을 두고 있으나 신생아특례대출 등의 정책금융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달 29일부터 시행되는 신생아특례대출의 경우 26조원의 공급규모를 예상하고 있으나, DSR 규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대출 수요를 자극하며 가계부채 통제에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물론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취지의 정책이지만,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게 어느 정도는 DSR 규제와 같이 개인의 경제 상황에 맞춰 기준을 설정하는 등의 구체적이고 엄격한 대출기준을 설정해서 실효성을 극대화 시키는 동시에 통화정책과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지난 기간 실패한 정책금융을 되돌아 보며, 금융당국의 정책과 통화정책 사이의 공조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결코 두 번의 실수가 발생하면 안 된다. 매년 국정감사의 주요 안건으로 가계부채에 대한 대응책 마련 부족이 지적되는 만큼 이미 역대급으로 증가한 가계부채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과 함께 정책 간 공조를 통해 유기적인 솔루션 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