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라져 버린 ‘민생’, 남은 건 ‘상처’와 ‘증오’뿐
2024-04-25 김시온 기자
이번 22대 국회의 4·10 총선을 보며 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은 ‘국민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증오‘와 ’갈등‘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총선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향해 ‘범죄자 심판’을 외치며 선거운동에 나섰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탄핵’, ‘개헌’, ‘200석 정권 심판’ 등을 구호처럼 외치며 선거 유세를 이어갔다.
국민의 민생을 위해 권한을 위임받아 나라의 일꾼으로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나아가야 할 정당들이 서로의 치부만을 드러내며 상대를 헐뜯고, 갉아먹으며 국민을 선동해 분열을 부추기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여와 야, 좌익과 우익의 충돌은 있었다. 또 정당끼리의 의견 충돌과 건강한 갈등은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보이는 갈등은 건강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갈등의 원인도, 과정도 ‘국민’과 ‘민생’을 위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도 넘은 혐오와 갈등의 시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몇 가지 원인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우선 유튜브를 비롯한 SNS의 발달과 이용자의 증가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사한 ‘매체별 뉴스 이용률’을 살펴보면 2021년 대비 2023년 뉴스를 보기 위한 매체 사용률에서 TV와 인터넷 포털은 83.4%에서 76.2%로, 79.2%에서 69.6%로 각각 7.2%와 9.6%로 큰 폭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메신저, SNS 등은 각각 1.6%, 2.6%, 3.3% 하락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뉴스 소비 자체가 줄기도 했지만, 이중 TV와 인터넷 포털 기사의 이용률 하락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즉, TV와 인터넷 포털을 이용해 뉴스를 소비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문제는 동영상 플랫폼과 SNS 등에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SNS의 알고리즘들은 평소 사용자가 즐겨보거나 관심을 가진 콘텐츠를 분석해 이에 대한 콘텐츠를 추천하고, 또 보여준다. 이에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에 최적화된 환경이 갖춰져 있다. 이 같은 특성이 이용자들의 정치관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또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우울감에 빠져버렸고,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이에 따라 개인주의는 심해졌고, 코로나19라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한 원망의 대상을 찾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원망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갖가지 이유까지 찾아 증오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정치권에서는 적극적인 해결책 제시보다 확진자의 증가 원인을 서로에게 떠밀며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해외 입국을 막지 않아서 그렇다’ 등의 주장을 펼쳤고,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펼치는 정책이 소상공인을 어렵게 만든다’며 서로를 탓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 민감한 사회 문제를 정치적 아젠다로 끌고 오는 행위는 과거부터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사고로 158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하늘로 떠났을 때,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사망자를 두고 ‘피해자’인지 ‘희생자’인지를 두고, ‘참사’인지 ‘사고’인지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서로의 책임을 묻기 바빴다.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는 뒷전으로 밀린 채 정치적, 사상적 입맛에 맞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선동 때문인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면 대중은 사망자 등에 대한 애도나 위로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심이 우선시 돼버렸다.
이런 모습은 선거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각 후보와 정당의 주요 정책과 후보자 개인을 보기보다 당만을 보고 투표하는 이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에 심겨버린 ‘갈등’과 ‘증오’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큰 나무로 성장 나가고 있다. 이 나무를 키울지, 뽑아낼지는 국민의 몫이다.
지금처럼 ‘네거티브 경쟁’에 국민이 ‘관심’이라는 양분을 주면 이 나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고, 상대를 공격할 무기를 찾아내기 바쁜 모습을 보일 것이다.
반면, 국민이 정당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각 정당과 후보에 대한 정책에 더 집중하고, 이를 판단의 척도로 삼는다면 갈등과 증오의 씨앗 심겼던 자리에 ‘민생’이란 씨앗이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