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본회의 오르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보이는 손’은 되지 않길
2024-05-16 이기봉 기자
반대로 그는 정부를 비롯한 특정한 집단 혹은 소수의 이익집단이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이들의 의지대로 가격이 조절되거나 자원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는 것을 ‘보이는 손’이라고 지칭하며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수 세기가 지난 대한민국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언급했던 보이는 손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안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하면서, 오는 임시국회에서 해당 법안들에 대한 재표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양곡법은 쌀, 보리 등 곡류에 대한 효율적인 수급관리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고, 농안법은 농수산물의 유통과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이다.
현재 양곡법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가격안정을 위한 양곡의 수급 관리와 관련된 16조 제4항이다.
현행법에서는 ‘미곡(米穀)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되거나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이상 또는 이하를 매입하게 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가 반드시 곡식을 매입해야 하는 의무규정이 아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쌀값이 폭락하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해당 조항을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쌀의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 가격이 평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부를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된다.
농안법 개정안에도 농산물 가격이 기준치 미만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농산물 가격보장제’의 내용이 담겨있어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남은 21대 국회 임기 동안 주요 민생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표하면서 두 법안의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농안법 개정안에 대해 “주요 곡물과 농산물의 가격보장제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소비자와 농민 모두를 살리는 일석이조의 법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단체들은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쌀이나 작물이 초과 생산될 수 있다며 우려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을 두고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송 장관은 지난달 3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쌀 소비는 줄고 생산은 늘어 재고가 많은데 이 법으로 남아도는 쌀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쌀을 보관하는 비용도 엄청나게 드는데 양곡법으로 보관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쌀 매입비는 1조2266억원, 보관비는 4061억원으로 1조6327억원에 달하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생산이 더 늘어나 매입·보관 비용이 2배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매입비와 보관비를 합하면 비용은 3조226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농산물의 가격 보전만으로는 농산물 수급 안정이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들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에서 최근 진행된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으로 농산물을 제외한 축산품 등 다른 품목에 대한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김한호 서울대학교 교수는 “가격지지 또는 정부 매입 등을 통해 예산과 정부 재고 부담이 가중되는 정책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생산자가 자율적으로 위험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생산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도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은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품목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농업인과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여·야·정 협치를 통해 우려를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물론 농가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쌀을 매입하고 농산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다만, 국내에서 재배되는 400여가지가 넘는 농산물에 보상을 적용하면 국가 재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농산물이 아닌 다른 직종의 물품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다.
아직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기 전인 지금부터라도 서로의 귀를 열어 현실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여야정간의 심사숙고와 농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양곡법과 농안법이 시장을 방해하는 ‘보이는 손’이 아닌 이상적인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