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객관성을 상실한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는가?

2024-06-05     김시온 기자
▲ 김시온 기자
“들어올 거면 맞다이로 들어와, 뒤에서 XX 떨지 말고”

지난달 25일 민희진 대표는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배임 의혹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이 발언으로 여론전에서 코너에 몰렸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구사일생’했다.

그녀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쏟아낸 말 상당수는 화제가 됐고, 온라인상에서 하나의 ‘밈’이 되어 떠돌거나 쿠팡 플레이 예능 ‘SNL 코리아’에서 풍자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민 대표는 기자회견 도중 “아저씨들이 아니 X저씨들이”, “제 법인 카드 보잖아요? 야근 식대밖에 없어요”, “이 업을 하잖아?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어 XXXX들이 너무 많아가지고”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 통해 대중은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됐고, 하이브와 민희진의 충돌에서 민희진을 지지하는 여론이 크게 상승했다.

심지어 해당 장면은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하루 만에 1.4억 뷰를 달성하는 등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민희진 대표의 이 같은 발언들은 진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전달’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따른 ‘호소’에 가깝게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호소로 여론은 뒤집혔다. 사법부 판단 등 객관적인 진실이 드러나기도 전에 한 사람의 공감되는 말 몇 마디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런 모습은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 갑질 의혹’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강 훈련사에 대한 갑질 의혹은 최근 자신을 보듬컴퍼니에서 일했던 전 직원이라고 밝힌 A씨가 채용‧구직 플랫폼 잡플래닛에 기업 평점을 5점 만점에 1.7점을 주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보듬컴퍼니에서 일했다고 주장하는 전 직원이 눈물을 흘리며 약 봉투를 방송에 보여주고 강 씨에게 피해당했다고 호소하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다만, 이들의 피해 주장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자료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강형욱 대표 측의 반론이 나오기도 전에 여론은 강 씨의 가해자 포지션을 굳혀가는 듯했다.

이후 강형욱 대표가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제기된 의혹들에 관해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고, 여론은 강 씨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으로 나뉘었다.

두 사례 모두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자료보다는 감정적인 호소로 인해 여론이 움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여론에 일부 언론도 동참하거나 심지어 주도하면서 혼란을 가중했다는 점이다. 

민희진 대표의 발언을 연일 보도하며 마치 ‘정의로운 행위’처럼 묘사한 언론도 있었고, 강형욱 대표의 갑질 의혹에 대해 초기에 보도한 일부 매체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일방적인 측의 일방적인 인터뷰를 담아낸 언론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명백한 증거나 자료가 없었음에도 불굴하고 한 측의 감정적인 호소나 그럴듯한 설득으로 인해 일부 언론을 움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여러 학자는 언론의 객관성 유지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평론가 월터 리프먼은 “언론이 ‘세상과 대중 사이의 창’ 역할을 하면서도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라고 지적했고,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교수 역시 “언론이 종종 권력과 자본의 이익에 의해 영향을 받아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언론의 객관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이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본인의 저서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이론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언론의 객관성은 이상적인 공론장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즉, 하버마스의 말처럼 언론과 같은 공론장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이 훼손된다면 대중은 언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올바른 역할을 하려면 언론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