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사 갈등에 시작도 못한 최저임금 논의···구조적 개선이 필요할 때
2024-06-28 이기봉 기자
지난 13일까지 4차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계와 경영계는 특수형태근로(특고)종사자 및 플랫폼 종사자의 최저임금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진행했다.
근로자 의원들은 현재 배달기사 등 특고·플랫폼 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임금 하락과 고물가로 인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용자 위원들은 도급 노동자의 노동 유형이 천차만별이므로 대법원의 판례로 인정된 노동자에게만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노사는 4차 회의에서 특고·플랫폼 종사자 등 근로자가 아닌 노무 제공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확대는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공익위원의 의견을 수용하며 추가로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특고·플랫폼 종사자의 문제가 일단락됐음에도 최저임금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업종별 차등적용’이라는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
현행 최저임금법 4조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고려해 정하고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도입 첫해인 1988년 이후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3월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돌봄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하고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차등적용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 회의’에서 “현재 내국인 가사도우미, 간병인 임금 수준은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의 돌봄 업종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도 최저임금의 부담으로 인해 한계에 내몰린 상황이라며 업종별 차등적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전날(18일) 소상공인연합회 대회의실에서 ‘2025년도 최저임금 소상공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업종별 차등적용의 시행과 최저임금 제도 개선, 주휴수당 폐지 등을 촉구했다.
유기준 소공연 회장 직무대행은 “최저임금은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올해 9860원으로 약 50% 이상 상승했다”며 “이로 인해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15만명에서 437만명으로 22만명 늘어날 정도로 소상공인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노동생산성이 낮은 편의점, 커피숍, PC방 등의 업종에서 구분 적용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며 “근로자에게 사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인건비 부담을 낮춰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업종별 구분 적용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자 위원들은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제도 취지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미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임위 회의에서 “특정 업종만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인력난이 악화되고 해당 업종의 경쟁력만 낮추게 된다”며 “이런 것에 대한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면 차등적용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도 “최저임금 차별적용은 경제적 차별이면서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사회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양대 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저임금 차별철폐! 온전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토론회를 열고 최저임금 논의를 오랜 기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날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헌법에서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고 최저임금법의 적용 범위를 폭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산업 업종별 또는 지역별 최저임금이 전국단위 최저임금보다 낮게 설정되면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고용 및 직업에서의 차별협약을 위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영계는) 구분적용에 따라 근로자들이 해당 사업장 취업을 기피해 근로자 고용에 차질이 생기는 점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산업별·지역별·계층별 구조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노사가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다투고 있는 가운데, 이달 27일로 예정되어있는 최저임금 법정 심의 기간은 이제 열흘도 남지 않게 됐다.
현재까지 4차례 회의가 이어졌지만 노사 양측 누구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의견을 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에도 노사는 법정기한(6월 29일) 일주일을 앞두고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시했으며, 법정기한을 약 3주 넘긴 7월 19일에나 최종 확정을 지은 만큼 올해에도 비슷한 수순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렇듯 국민 대다수가 적용받는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9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해결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지난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약 36년간 법정 심의기한을 지킨 것은 단 9차례뿐이며 노사 간 합의에 의한 결정도 7번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은 2년 단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며,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노사단체 또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해 “매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갈등·대립 구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앞으로 개선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최저임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진행되지 못한 채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더 이상 최저임금이 아닌 다른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특고·플랫폼 종사자, 업종별 차등적용도 중요하겠지만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이름에 알맞은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가 먼저 오가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