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 질병화는 게임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2024-07-25     김준혁 기자
▲ 김준혁 경제산업부 기자
“(사이버머니) 1억은 새발의 피인가?”, “현실 속처럼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지나?”
 
위 질문들은 지난 2003년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이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서 들었던 질문들이다.
 
현 세대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이 많은 이들로 존경을 받고, 국제대회 우승 성과를 통해 대통령으로부터 축전을 받는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굉장히 무례해보일 수도 있는 질문이다.
 
다만 해당 내용이 방송됐던 20여 년 전은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게임 문화 자체에 대해서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임요환 또한 지난 2019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 와서 보면 e스포츠를 몰랐는데 알게 된 사람조차도 (당시) 영상을 보면 경악을 할 것”이라면서도 “저 당시에는 저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회고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은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다. 게임 산업의 규모도 점차 커지면서 이제는 K-콘텐츠의 중심을 이루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의 국내 게임 이용률은 74.4%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 게임 산업의 지난해 수출액은 83억450만달러로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 129억6300만달러 중 64.1%를 차지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K팝(8.1%), 드라마·예능(6.4%) 모두 수출적인 측면에서 게임과 비교 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정부 또한 K-콘텐츠의 국가전략사업화를 발표하며 한국 게임의 취약 분야인 콘솔게임 집중 육성을 위해 글로벌 콘솔 플랫폼사와 협업해 우수 콘솔게임 발굴, 홍보 등의 체계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2024년의 게임 문화는 2003년 임요환의 아침 방송 출연 당시와 비교해 격세지감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하지만 게임 유저들과 게임업계는 아직도 사회의 부당한 인식과 맞서야 하는 안타까움에 놓여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이들이 각종 사회 범죄의 원인을 게임과 연관 짓는 편의적인 원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지난해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분석”이라며 “게임 원인론은 20년 전에 이미 기각한 가설”이라고 밝혔으며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또한 같은 방송에서 “섣부른 게임 원인론, 영화 원인론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에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제는 게임을 정신장애으로 취급하려는 움직임과도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해당 문제는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기존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0을 개정한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국내에서는 오는 2030년 통계청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하며 KCD는 관행적으로 ICD를 준용해 작성되어 와 게임이 국내에서도 질병코드로 등록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업계와 유저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일각에서는 연구자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이슈에 대해 WHO의 결정은 게임과 관련한 이들이게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복잡한 사안이란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록은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큰 피해가 예상된다.
 
지난 2022년 전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산업 전체 매출을 20조원으로 가정했을 때 8조8000억원의 피해, 국내총샌산 12조3623억원 감소, 일자리 8만여개 감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이를 방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를 방지하기 위한 통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다.
 
강유정 의원실은 “WHO는 회원국이 국제질병분류를 가능하면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현행법이 이를 반드시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게임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게임산업 규모와 매출 감소로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게임업계와 유저들이 게임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전 임요환에서부터 오늘날의 많은 평범한 게이머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게임을 지키고 그 문화를 즐기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 법안 폐지라는 사회의 변화까지 이끌어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게임을 문화로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과 계속해서 끝없는 싸움을 펼쳐나가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을 뿐이다.
 
사회의 한 쪽에서 게임을 편의적으로 악으로 규정하고 규탄의 대상으로 삼을 때 이들은 그러한 편견에 맞서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게임의 질병화는 게임 문화를 지키기 위한 유저들의 노력과, 게임을 한국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업계의 노력을 모두 폄훼하는 것이다.
 
페이커 이상혁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e스포츠가 스포츠가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스포츠라고 하면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게 기존 관념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게임 문화와 이로부터 비롯되는 긍정적 영향, 영감을 게임의 질병화로부터 지켜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