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이초 1주기에도 추락한 교권은 ‘제자리걸음’

2024-08-02     이기봉 기자
▲ 이기봉 기자
지난 18일 전국 곳곳에서 서이초등학교 교사 순직 1주기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행사에 참여해 학부모의 민원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힘들었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고인의 부모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발령통지서를 받아 들고 기뻐하던 모습이 선하다”며 “교사 초년생이었던 딸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대답도 들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도 고인을 추모하며 추락한 교권을 회복해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SNS를 통해 “교권을 올바로 세우는 것은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기본적인 토대”라며 “교권 보호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교권 보호의 뜻을 내비쳤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선생님들의 간절함에 정부와 국회가 협력해 교권 보호 5법을 개정하는 등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며 “선생님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호되어야 모든 학생의 학습권도 함께 보호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8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으며 국회에서는 일명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추락한 교권을 회복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통해 교사들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으며 교육청은 교사가 생활지도 중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면 이에 대한 의견을 조사·수사기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변경해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교육부는 이러한 제도적 기틀을 통해 교사들의 아동학대 불기소율이 높아지는 등 현장에 변화가 생겼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아동학대 신고 시 교육감의 의견 제출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달까지 9개월 동안 제출된 교육감 의견서는 총 553건이었다.
 
그중 교육감이 교사가 아동학대를 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정당한 생활지도’로 의견을 낸 것은 387건(70%)에 달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종결한 아동수사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159건 중 111건(69.8%)이 불기소 결정됐다. 이는 교육감 의견 제출 의무화 도입 전인 지난 2022년과 비교했을 때 불기소 비율이 약 17.9% 증가했다.
 
또한 교육부는 전국 1만3952개교 중 98.9%가 학교 민원대응팀을 구성해 교사가 홀로 악성 민원을 감당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민원을 응대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부가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이를 알고 있거나 이용해본 교사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교사노동조합연맹을 비롯한 교원단체들이 전국 학교의 교원 59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원상담실과 민원대응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조사에 응한 교원 중 94.8%가 민원 상담실을 사용한 경험이 없다고 답했으며 59.8%는 민원상담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또한 민원대응팀이 조직된 사실에 대해서도 52.6%는 모른다고 응답했으며 학부모 등의 민원을 맡는 사람도 51.1%가 여전히 ‘담임 또는 교과 교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교권보호 5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아동학대 고소가 두려워 교육활동과 생활지도를 힘들어하는 교사들도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인천교사노조가 인천 교사 1828명을 대상으로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인식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생·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를 받는다’고 대답한 교사가 8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교권보호 5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학생·학부모가 교사의 정당한 학생 지도행위에 불만을 품고 고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교사들이 아동학대 고소 가능성으로 인해 교육활동과 생활지도가 위축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정당한 생활지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것은 아동복지법에 따른 ‘정서적 학대행위 금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에 따르면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해놓았다.
 
교사들은 ‘정서적 학대행위’라는 표현에 구체적인 기준과 행위가 없어 무고한 아동학대 고소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학생과 학부모가 이를 정서적 학대행위라고 주장해버리면 교사가 정당성을 입증할 방법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가 불기소 처분을 받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는 이에 대한 피해가 적은 반면, 교사들은 경찰 및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피폐해져 교단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16년 정서적 학대행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여러 제반 사정들을 종합해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고 판단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서이초 1주기가 지난 지금도 많은 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과 학생들의 지나친 행동을 제지하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달 한 초등학생이 무단 조퇴를 제지하는 교감의 뺨을 때리고 해당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담임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한 것은 바닥까지 추락한 교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물론 학생의 수업권(배울 권리)은 헌법 제31조에 규정된 보호받는 중요한 권리인 만큼 충분한 보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교사들도 수업권과 비슷한 수준의 교수권(가르칠 권리)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서이초 1주기 합동추모식에서 “모든 선생님이 행복하게 가르치는 학교, 학교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꿈꾸는 학교를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학생과 교사들이 서로 존중하고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운영이 되는 학교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