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탈중국의 시대, 민관협력 통한 ‘팀코리아’돼야
2024-09-27 진민석 기자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되면서, 이는 곧 공급망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에게서 멀어지려는 산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2022년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해 현지 판매량 증대를 꾀하던 국내 전기차 생산업계에 큰 타격을 줬다.
전기차 조립, 부품 현지 생산에 따른 세액공제 등을 골자로 한 해당 법안은 해외우려집단(FEOC)으로 명문화된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광물 의존도를 줄이면서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제정됐다.
또한 유럽연합(EU)에서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탈중국화가 시작됐다.
EU는 지난 5월 발효된 반도체, 배터리용 광물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원자재법’(CRMA)을 통해 2030년까지 제3국산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려는 전략을 꾀했다.
이처럼 세계 주요국들의 대중(對中) 정책 수위가 나날이 강화되면서, 그 피해가 국내 산업계에도 번지는 양상이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수시장 집행위원은 해당 법안이 미국의 IRA와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한국 기업 등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이로 인해 관련 업계는 초비상에 걸리기도 했다.
미국 현지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을 사용한 전기차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IRA에 이어 유럽의 CRMA 기준도 맞춰야 하기에 국내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실제로 업계 내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및 부품 제조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면서 공급망 다변화와 영구자석 및 제품에 사용된 원자재에 대한 정보 수집 및 관리 등을위한 장기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미 정부가 최근 자동차의 자율주행이나 통신 기능에 중국 또는 러시아산 소프트웨어나 부품을 사용하는 자동차의 판매를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관련 업계에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미국에 자동차를 판매하는 한국 기업이 중국의 소프트웨어나 부품을 사용하고 있을 경우, 공급망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중국이 서방의 대중 규제에 대한 보복성으로 희토류, 갈륨 등 반도체 제조에 있어 필수 요소로 꼽히는 광물들의 수출 통제라는 강력 대응으로 되갚자, 문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규제 강화에 발맞춰 도쿄일렉트론을 비롯한 반도체 장비의 수출 제한 강화를 시사하자 중국은 곧바로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이미 2010년 당시 중국은 당시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유권 갈등 속에 전자산업에 핵심적인 광물인 희토류 수출을 일시 중단하면서, 일본 내 제조업 전반이 크게 휘청인 바 있기도 하다.
이처럼 전 세계 음극재의 96%가량을 생산하는 중국에 대한 핵심 광물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만큼, 국내 업계는 중국의 ‘자원의 무기화’라는 보복성 규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 디커플링에 기인한 문제는 비단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타 업계들이 중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설 때 중국몽(夢)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업계, 석유화학이 있다.
꾸려고 꾼 중국몽이 아니라 꿀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을 만드는 데에 기초 원료로 사용되는 에틸렌의 중국 수출 비중은 80~90%에 달할 뿐 아니라 수출되는 전체 석유화학 제품 중 절반가량이 중국으로 가는 등 의존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현지의 석유화학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기존 우리 기업이 수출한 석유화학 제품을 중국이 재가공해 세계 각지로 수출하는 구조가 무너졌고, 이로 인해 중국 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석유화학업계의 중장기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저성장 국면에 진입함에 따른 수요 동력 약화와 더불어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부담이 맞물려 수익성 저하가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도 가만히 손 놓고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 업계의 공급망 마련을 위한 9조7000억원을 쾌척해 정책 금융을 지원하는 등 금융·세제 및 인프라 지원을 강화하고, 조속한 국내 배터리 및 자동차 업계의 공급망 자립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정부 간 협력 채널이자 공급망 다자협력체인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를 통해 주요 광물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재정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기업들 역시 IRA와 CRMA에 대응해 자구책으로 중국에서 벗어나 호주와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필요 광물을 공급받으려는 전략을 꾀하는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석유화학 업계의 움직임과 대응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정부 또한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배터리·전기차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의 최종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세일즈 외교’ 활동에 총력을 기울인 바 있다.
이를 통해 원전 분야에서만 13건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고, 배터리·미래차·로봇 등 3대 핵심 산업의 공동 연구·개발(R&D)을 비롯한 양국 산학연간 협약도 거머쥐었다.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린 석유화학 업계의 새로운 수출국 발굴과 수출 영토 확장을 위한 대응 전략을 민관이 협치해 고민해 봐야 할 순간이다.
지금은 ‘팀코리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