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로또청약 시대의 ‘분양가 상한제’, 시장 논리 거스르지 말아야
2024-11-07 김민성 기자
최근 한 부동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어느 네티즌의 표현이다.
현재 부동산 청약은 말 그대로 ‘로또’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치열한 상황이다.
최근 진행한 서울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의 경우 1순위 청약 경쟁률이 268.69대 1를 기록했고, 인천 송도역 인근의 래미안송도역센트리폴3BL도 31.03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청약 과열 현상이 빚어졌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러한 시장의 과열을 두고 ‘분양가 상한제’(이하 분상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분상제는 최대 분양가를 제한하는 제도로, 높은 분양가 논란과 투기 억제,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공공택지와 규제지역 내 민간택지에서 지어지는 공동주택에서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분상제가 적용된 지역에서 청약에 당첨되면 인근 실거래가보다 싼 값에 분양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세 차익을 노린 사람들이 몰리면서 청약 과열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장에서는 분상제가 ‘실수요자에게 주택 공급’이란 목적에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로또청약은 안 그래도 불안한 투자심리를 자극하면서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끌어들인다”며 “동탄 청약 건은 15억원 시세의 아파트가 4억8000만원에 분양가가 나왔으니 난리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이벤트성 로또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분상제를 둘러싼 문제점은 개인 분양자들의 입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재개발 구역에서의 경우 분상제가 건설사와 재개발 구역 조합 모두에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분양자들에게 판매하는 비용이 제한돼 사업성에 구조적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개발 사업은 선정 구역의 ‘원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건설사에 시공을 의뢰하고, 완공된 부동산을 일반 분양자들에게 판매하여 발생한 수익으로 건축비를 지불하는 구조다.
따라서, 최대 분양가의 제한은 곧 재개발 조합의 사업성 제한을 의미한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지역 조합원들이 누려야 할 혜택을 일반 분양자들에게 대가 없이 나눠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재개발 구역 조합 관계자는 본지에 “최대 분양가 제도는 조합 입장에서 상당히 귀찮게 작용한다”며 “어차피 인근 부동산의 실거래가를 따라서 금새 (가격이) 조정될텐데, 사업에 착수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건설사는 재개발 구역의 사업성에 맞는 수준의 건축비를 투자하여 시공비를 산정해 수익을 내야하는데, 분양가가 제한됨에 따라 사업성 평가와 수익 실현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 올해 들어 경기·인천 등 수도권 일부 공공택지에서는 사전청약까지 진행된 사업이 취소된 사례가 벌써 수차례 나오고 있다.
파주의 한 재개발 구역은 2022년 사전청약까지 마쳤지만, 시행사가 “급등한 공사비에 시공사를 구하지 못했다”며 사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특히 건설 업계는 최근 몇 년간 급상승한 건설 자재비 때문에 더욱 골치인 상황이다. 분양가의 상한선을 결정하는 요소 중 정부에서 결정하는 ‘건축비’ 항목이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3월까지 4년에 걸쳐 산정 건축비를 24.11% 올린 반면, 동기간 실제 현장 건축비는 30.06% 상승해 재개발 사업성을 더욱 낮췄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실적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 팀장은 “주택을 공급하려면 시공사가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현재의 기본형 건축비 조정 수준은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추후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을 위해선 기본형 건축비를 올려서 사업성을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분상제는 로또청약을 통해 소수만 이득을 보는 구조, 민간 택지 개발을 둘러싼 원주민 조합과 건설사의 리스크 부담 등의 부작용을 안고 있어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지만,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서 현행보다 분상제를 더욱 확대 및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히려 분상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더 폭등하지 않고, 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주된 요지다.
실제로 올해 9월 분양된 청담동의 아파트는 분상제가 적용됐음에도 평당 7200여만원의 높은 분양가가 책정됐으며, 상한제 축소 이후 오히려 인근 부동산의 시세가 상승한 지역도 있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분상제 적용에도 20억원이 넘는 분양가가 책정됐는데, 로또분양이라고 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며 “만약 분상제가 적용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높게 책정됐을지 짐작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행대로 분양가 상한제가 유지된다면 오히려 건설사들의 경영악화와 사업 기피로 주택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정부 차원의 공급정책과 민간과 기업 차원의 사업성이 모두 보장되어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지점이 생길 것이다.
현행 분상제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논리인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과 고전 자유주의사상의 핵심 원동력인 ‘이윤추구’라는 두 개념과 모순되고 있으며, 단순히 겉보기의 분양가를 낮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무작정 분상제에 대해 폐지와 존치 두 개념만을 저울질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게끔 현실적인 제도로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국가 차원의 공공택지에서는 현안의 분상제를 유지하고, 민간택지는 완화함으로써 주택 공급 수준과 민간의 사업성 모두를 고려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풀어가야 될 문제는 많다. 국내의 경우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의 인구밀집 형태라 지역별 주택 수요가 다르며, 실수요자들 간의 소득 불균형, 대출 금리 문제 등 고려할 사항은 무수히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의 현행 분상제로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 어폐가 있다.
이제는 기존 분상제의 문제점을 수용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전면적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