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美공화당의 압승이 일깨워 준 대한민국의 현실
2024-11-21 진민석 기자
특히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대선 예측 모델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승리 가능성을 56%,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43%이라고 발표했다.
매체는 전날 두 후보 승리 가능성을 50대50이라고 했었으나, 두 후보 격차가 하루 만에 동률에서 13%포인트 차이로 급격하게 벌어졌을 뿐 아니라 해리스가 276명(과반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트럼프(262명)를 상대로 승리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실제 출구조사에서 포착된 유권자 호감도에서는 해리스가 트럼프를 소폭 앞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7대 미국 대선은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공화당이 상원에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백악관과 행정부는 물론 입법을 관장하는 상·하원의 주도권마저 쥐게 됐다.
사법 최고기관인 연방 대법원도 9명 중 6명이 보수성향 대법관이기에 트럼프가 입법과 행정, 사법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것이란 평가도 제기됐다.
이처럼 초반 무시 못 할 지지율 격차를 차츰차츰 벌리고 나서도 민주당이 공화당에 ‘레드스윕’을 당하게 된 이유를 두고선 미 정계 내에서는 먼저 노동 계층에 대한 접근법 오류를 꼽았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파괴하려는 당신들의 의제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문제에 집중해달라’고 4년간 비명을 질렀지만, 이 나라의 엘리트들은 듣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모든 곳의 유권자와 소원해졌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반해 2016년 대선 당시 저학력·블루칼라 백인 남성들의 좌절을 읽어내면서 승리를 쟁취한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는 ‘다인종 노동자 정당’으로 외연 확장에 성공하면서 그간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세력들을 공화당으로 이끌었다.
특히 민주당 텃밭이라는 소위 ‘블루월’ 중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 트럼프가 해리스에게 패하긴 했으나 지난 대선과 비교했을 때 격차를 대폭 줄이는 등 이른바 ‘샤이 트럼프’로 불리는 숨어있던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지 못했다는 점이 크다.
실제로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서 뉴욕타임스(NYT)는 백인 민주당원들이 백인 공화당원들보다 더 많이 투표 참가 의사를 밝혔다며 트럼프 지지도가 조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점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미 정계에서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부통령으로 몸담고 있는 해리스가 바이든과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민주당을 더는 겪고 싶지 않다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는 것이다.
당초 민주당 후보였던 바이든이 6월 TV토론에서 트럼프에게 판정패하고 7월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 카운티 유세 도중 총격 사건을 당한 뒤 민주당 후보는 해리스로 교체됐다.
해리스는 이후 이어진 전당대회, TV토론을 통해 승기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10월 중순쯤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하에서 진행형인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이민·국경정책에 대한 불안감, 올해에도 격화하는 양상의 두 개의 전쟁에 불만을 갖고 있는 유권자 전반에 굉장한 실망감을 안겼다.
이 같은 수만 리 떨어진 나라의 대선 결과가 동아시아 작은 나라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19대 대통령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소위 ‘팬덤 정치’를 즐기며 거듭 자신의 기준으로 국민을 가르면서 경제는 뒷전이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는 곧 2030 남성 유권자의 ‘문재인 심판론’으로 이어지면서 20대 대선에서 다시금 국민의힘이 집권할 수 있는 빌미를 가져다줬다.
다만 역사는 되풀이되듯, 거듭된 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설전과 공방은 이들을 지지하던 당원과 유권자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이밍을 잡지 못해 커져만 가는 김건희 여사라는 눈덩이와 명태균의 녹취로 촉발된 공천개입 사건으로 보수 표심은 점점 희석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이미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지난 22대 총선에서 씁쓸한 패배를 맛봐야 했다.
대선에서 승기를 잡게 했던 2030 유권자 표심은 불과 2년 사이에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세가 급격히 약화한 것이다.
특히 미국 민주당의 ‘블루월’처럼 ‘보수 텃밭’으로 일컬어진 경상도 내에서 민주당이 분발하며 최종적으로 범야권이 192석이라는 거야(巨野) 체제를 다시 재창출해 당정은 힘을 잃었다.
이 당시 제기됐던 것 또한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최근 3주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17%라는 역대 최저 지지율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미 대선 결과를 보며 어떤 고민을 했을까.
바이든처럼 집권여당의 발목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처럼 외연 확장에 성공해 당정에 승기를 가져다줄 것인가?
이제 윤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