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권한대행 겁박을 보는 싸늘한 시선

정국·경제 안정에 역주행 말아야

2024-12-20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정통 관료 출신으로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행정가로 통한다.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에 들어선 이래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서 실무를 익혔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를 지냈고 무역협회장을 했다가 윤석열 정부의 총리로 다시 기용됐다. 두 번의 총리 재임을 합치면 3년 5개월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로 꼽힌다. 상공부 국장 시절 핵심을 짚어내는 빈틈없는 업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경제 담당 기자들로부터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행정전문가’라는 평가를 들었다. ‘달인’의 칭호를 받은 셈이다.
 
노선 차이가 있는 노무현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면서 정책 방향이 달라 애를 먹었을 법도 한데 과도한 진폭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에 따라 가급적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여론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에서도 세율과 세제 등 조세 원칙을 고수해 정치 리더십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축소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대통령 대행이라는 지위에 오르면서 그동안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지켜온 원칙들이 끝까지 통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경제적 식견이나 통상 외교와 행정 분야의 경험 등으로 볼 때 권한대행으로서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는 여망과는 달리 벌써 정치적인 견제와 외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권한대행을 맡기 전 한 총리가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소추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또 한 총리를 내란죄로 경찰에 고발하겠다며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을 내란 가담 혐의로 수사하는 특검법도 만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그 후 “너무 많은 탄핵을 하게 되면 국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겠다”며 “일단 탄핵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고 말을 돌렸다. ‘일단’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니 수틀리면 언제든 다시 탄핵에 들어갈 수 있다는 엄포나 다름없이 들린다.
 
김병주와 김민석 최고위원 등 민주당 지도부는 “한 권한대행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자기의 권한을 넘어가는 범위이므로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고 미리 공언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9일 오전 임시 국무회의가 열리기 직전 “탄핵 민심을 거부하고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압박을 더했다. 이날 국무회의를 거쳐 한 권한대행은 6개 쟁점 법안(양곡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업재해대책법·농업재해보험법·국회증언감정법·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는 “오로지 헌법 정신과 국가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심했다”고 밝혔다.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므로 이론상 대통령이 하는 모든 권한을 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권한대행 자체가 일시적 현상 유지의 역할에 있으므로 권한을 좁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견이 있지만 거부권은 통상적 대통령 업무에 속하므로 행사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전 총리는 사면법 개정안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있다.
 
탄핵 거듭되면 시장 혼란 키워
 
양곡법 등 농업 4법은 시장원리를 외면, 재정지출을 늘려 만성적인 공급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국회증언감정법, 국회법도 탄핵 정국 속에 재정과 기업 부담을 키우는 등 경제 여건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야당의 탄핵 위협으로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더라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았을 전망이다. 나아가 민주당이 이를 빌미로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무리수를 강행하게 되면 더 큰 파장을 부를 위험이 크다. 한 권한대행 체제가 경제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증시와 외환 등 국내외 금융시장과 수출에 미치는 부작용이 커지고 대외신인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탄핵 전 민생을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여러 법안들은 야당에게 발목을 잡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속세 공제 한도를 자녀 1인당 5억원으로 올리고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려던 상속세 및 증여세 개정안은 ‘부자 감세’ 프레임을 내세운 민주당 반대로 무산됐다. 특별 세액공제를 담은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높이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재건축 재개발 특례법 제정과 단말기 유통법 폐지안도 연내 처리가 무산됐다.
 
계엄 선포와 탄핵의 충격에 눌린 경제는 아직 회생 기회를 찾지 못하고 뒷걸음치고 있다. 그 부담은 모두 국민과 기업에 돌아가 민생을 짓누른다. 권한대행 체제가 경제 안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정치권이 할 일이다. 차기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분들이 나서 우선 정국과 경제를 안정시켜야 한다. 지금은 줄줄이 탄핵을 내세워 설칠 때가 아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