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을사늑약’에 빼앗긴 외교권, 120년 뒤 손수 내어준 대한민국

2025-01-09     진민석 기자
지난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이 일본군을 동원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했다.

박제순 대한제국 외부대신과 하야시 곤스케 주한일본공사 간 체결된 이 조약으로 19세기 말부터 꾸준히 일본 정계에 오르내린 ‘정한론’(征韓論)이 현실화됐다.

결국 국내 모든 외국공관은 철수됐고, 해외의 대한제국 공관 역시 빠지는 등 한국의 외교권은 철저히 일본제국의 손에 넘어가면서 국제사회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특히 한국의 정사(政事)와 행정 등을 장악하기 위해 통감부를 설치해 이후 1910년 한일이 병합된 ‘경술국치’에 앞서 이미 식민지로 전락해버렸다.

이로 인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국민뿐 아니라 국가의 존속마저 피해를 입었다.

꼭 120년이 지난 2025년 대한민국은 이제 목놓아 부르짖던 그 외교권을,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제 손으로 내어주고 있다.

이미 꽁꽁 얼어붙었던 경제 한파 속 윤석열 대통령의 기상천외한 비상계엄 선포로 이미 사그라들 대로 사그라든 당정의 지지율은 문자 그대로 ‘수직 낙하’했다.

마치 급락한 지지율이 혹여나 다시 오를까 걱정인 듯 윤 대통령은 그간 자신이 비난해 마지않았던 ‘더불어민주당식 이중성’의 전철(前轍)을 밟듯 계엄령 선포의 당위성에 대한 합리화를 거듭 대중에 설파해 나갔다.

이러한 와중에 이어진 국무위원들의 ‘줄사퇴’와 민주당의 ‘탄핵 폭거’에 대한민국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전락했다.

이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막아보려 했으나 탄핵 정국 속 여소야대 국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올라오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훨씬 빨랐다.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등판하면서 어찌어찌 갈 데까지 간 한국을 끌고 가려고는 하고 있으나 민주당의 탄핵 압박은 날이 갈수록 거세만 지고 있다.

특히 이달 20일 8년 만에 백악관으로 재입성하게 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또 다시 입성도 전에 한미일 안보 동맹의 주축인 한국 대통령 탄핵을 보게 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은 곧 한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다만, 외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는 웃기만 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지난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그의 정책적 면면을 들여다봤을 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기반으로 거래주의적 접근을 취하면서 비용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대척점에 서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취한 정책들을 180도 뒤집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견지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과거 4년 전보다 더 악화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 터져 나오고 있다.

이미 주한미군 감축을 공언한 바 있는 트럼프 당선인이 또 다시 이를 언급하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함께 한·미 FTA 재협상, 10~20%의 보편관세 등도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친분을 과시하면서 소위 말하는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러시아와의 군사 공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트럼프 당선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러 동맹뿐 아니라 북·미 관계 회복으로 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시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센터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대남 안보 위협은 유지하면서 대량살상무기 동결로 대미 위협만 줄여주고, 미국은 자신의 안보 위협만 줄이면서 평화를 증진했다고 자부하면서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그대로 받는 상태로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는 소외되면서 비용만 부담하는 초라한 신세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시시비비를 가리며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당장 세계 주요국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걸음걸이에 보폭을 맞추려 혈안인 상황 속에서 국회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치판은 이분법적 좌우 진영 놀이에서 서로를 향한 ‘칼부림’이 한창이다.

원래도 민생을 챙기지 않다 이제는 대통령 탄핵에만 혈안이 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인 1450원을 돌파해 어느덧 1500원을 향하는 등 환율이 흔들리고 물가가 휘청이는 현실에서도 국민들은 정작 굽어살피지 않는 대한민국 정치계는 지금이라도 ‘멸사봉공’(滅私奉公)해야 한다.

본인들의 밥그릇이 아닌 국민들의 쌀 한 톨을 챙기는 민생의 앞잡이가 되어야 한다. 자신들만 지탱해주는 동아줄이 아닌 겨우내 서민들마저 살피는 버팀목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나작굴서’(羅雀堀鼠)의 마음가짐으로 다가올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실리 외교를 추구하는 방향을 여야가 함께 획책해 이미 늦은 시점 민생과 결부된 사안에 중점을 두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