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칼럼] 우려되는 공동체 분열

2025-01-24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비상계엄과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사건 이후 자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의 일상에서도 정치 얘기 한 번 잘못 꺼냈다가 밥상을 뒤엎을 정도로 큰 싸움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막말과 욕설이 오가는 것은 기본이고 망신 주기, 편 가르기, 과격 행동 등을 통한 상대 억누르기가 횡행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심하면 절연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문제는 정치꾼들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으로 연대하고 발언하는데 그치지 않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표출하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자신의 과잉주장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팬덤에 의해 움직이면서 죽고 살기식 싸움을 일삼은 결과가 이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정치인 등에 대한 테러 증가로 귀결하지 않을 까 우려될 정도다.
 
양당 정치의 폐단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권력구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개헌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한국 정치 시스템의 모순이 다시 한번 노정되면서 87년 헌법 체계에 대한 재검토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무릇 정치란 서로 생각이 다르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이것을 해결하는 활동을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통제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아 국가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고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에서는 협치는 고사하고 죽고 살기식 싸움만 난무하고 있으니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아무리 주장이 다른 적이라 할지라도 여당은 야당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관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승리 이후 승자의 여유와 아량을 보인 적이 없다. 패자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위로하거나 포용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범법자라는 이유로 마치 검사가 피의자를 대하듯 냉대했다. 취임 이후 2년이 넘도록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이 대표를 따로 만나지 않는 등 이 대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무시당한 야당은 여소야대 국면을 십분 활용,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다수결 원칙을 강조하면서 탄핵 등을 남발했다. 다수의 생각이 꼭 옳은 것이 아닐 수 있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자세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인데도 모든 사람의 생각과 바람을 담아 내지 못하는 다수결 원칙에 매달렸다.
 
오죽하면 30년 전인 1995년 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겠는가. 이젠 정치가 혐오를 넘어 무용론까지 대두될 정도가 됐다.
 
유튜버들의 막가는 행태도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신문·TV와 같은 전통 미디어는 객관적 팩트를 우선시한다. 특정 집단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논쟁적 사안에 대해 검증을 중시하고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유튜브에선 진영논리가 먼저다. 얼마든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떠들 수 있고, 노골적으로 정파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심지어는 근거 없는 황당한 루머도 마구 끌어다 쓴다. 수퍼챗(후원금) 수익을 올리려고 막말·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유튜브 라이브(생중계)는 실시간 콘텐츠이기 때문에 광고 대신 수퍼쳇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더 많은 후원 수익을 얻는다.
 
정치인 입장에선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데 극렬 유튜브만한 도구가 없다. 그래서 유투버들이 우후죽순처럼 급격히 불어났다. 정파적 매체가 필요한 정치인들과 유튜버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지금은 정치권 전체가 저질 유튜버들에게 크게 오염된 상태다. 유튜브에서 구미에 맞는 얘기만 골라 듣게 되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점점 왜곡·편향된다. 정도가 심해지면 자신과 조금이라도 견해가 다를 경우 무조건 적대시 한다.
 
지금은 법원에 난입할 정도로 보수와 진보 간에 골이 깊어졌다. 그런 만큼 사태 수습에도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정치권 리스크의 장기화는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의 한국 탈출을 재촉하고 국가신용등금 하락을 유발, 경제 파탄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있을 수사 및 재판 결과에 여야 정치권 및 양극화된 강성 지지층이 승복할지 여부다. 불복하는 일이 없도록 사법 절차가 법과 원칙에 맞게 공정하고 흠결 없이 진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국론 분열의 증폭을 막을 수 있다. <투데이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