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용 1·2심 무죄에도 기계적 상고 택한 검찰, 국민들은 ‘답답’하다
2025-02-09 김신웅 편집국장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기업경쟁력 강화와 한국경제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이번 사건의 쟁점으로 떠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허위공시·부정회계 의혹에 대해 고의성 입증을 명확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바이이오젠의) 콜옵션이 행사되면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주요 위험라고 공시했어야 된다고 본다”면서도 “은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 부정 혐의와 관련해 압수한 18테라바이트 규모의 백업 서버 등에 대해서도 증거 능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 외에도 업무상 배임과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합병의 필요성, 합병비율 등에 관한 배임이 인정되지 않고, 공모나 재산상 손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 부정과 부정거래 행위 등에 대한 법리 판단에서 법원과 견해차가 커 대법원 판단을 구할 필요가 있다면서 상고를 결정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처음으로 친삼성 발언을 한다고 밝힌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검찰의 상고 결정을 두고 ‘경제 폭거’라고 날을 세웠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공개적으로 상고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재계 역시 삼성전자가 대외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 빠른 대처가 아닌 지난 10년처럼 서초동에 또 발이 묶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사과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한 것을 두고 무리한 기소에 대한 반성이 아닌 기계적 상고를 결정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대법원 재판의 경우 원심이 확정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심리 하지 않고, 법리에 대한 오해가 있는 지 여부 등만 따지는 ‘법률심’인 만큼, 검찰이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 속에서도 씁쓸함을 더 하는 대목이 있다. 이재용 회장이 서초동에 얽매여있던 기간 동안 삼성전자는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반도체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신규 고용 1위에 오르는 등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삼성의 컨티전시 플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인 상황이다.
이재용 회장도 지난해 11월 항소심 최후 진술에서 “최근 들어서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치 않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담담히 심경을 밝힌 바 있다.
물론 형사법의 대원칙을 깨거나 ‘죄’가 있는 데도 ‘죄’를 묻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최소한 기업 총수가 재판에 발목이 잡혀 ‘일’을 못하게 한다는 점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연일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 전쟁’의 서막이 올랐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전임 정부 때 신설한 반도체·배터리 보조금을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주 52시간 근로 규제가 반도체 업계 연구개발(R&D) 강화의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야권의 반대로 인해 막혀는 상황이다. 반도체업계에서도 해당 규제를 풀어달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지만, 의회 주도권을 꽉 쥔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해당 법안에 대한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이는 실정이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 속에서 검찰은 또다시 기계적 상고를 택했다. 형사상고심의위원회의 ‘상고 제기’ 심의 의견을 반영한 결정이었지만, 여러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해온 수사와 재판 과정을 물거품을 만들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한 것부터가 문제였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또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나왔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재판 등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활동에 발목을 잡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목소리도 찾아볼 수 없다. 여러모로 검찰의 결정에 대해 아쉬움과 씁쓸함 남는 대목이다. 삼성의 봄은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