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토지거래허가제 전면 개편해야

무리한 규제·혼선이 불안 부추겨

2025-04-04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는 46년 전 도입 당시부터 ‘사유재산권 침해’와 ‘토지공개념 실현’ 주장이 맞서 끊임없이 논쟁을 일으켰다. 부동산 투기가 한창이던 무렵 박정희 정부는 1979년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 이 제도를 도입했다. 공익을 위해 토지 소유와 거래를 제한한다는 취지였다. 유신 말기 통제가 엄했던 시기였지만 시장원리에 따른 부동산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가 사유재산 침해에 해당한다는 반발이 심했다.
 
토허제는 1989년 당국의 허가 없이 규제 구역의 땅을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한 개인이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제청을 내 심판을 받았다. 헌재는 ‘토허제는 토지의 처분을 전면 금지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지역에 한해 일정 기간 투기적 거래 등일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이고, 소유자에게 불허가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과 토지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사유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를 요지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7년 중반 다시 제기된 비슷한 제청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이 나왔다. 토허제가 반시장적인 규제라고 하지만 사유재산권의 기본원칙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고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외환위기로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려고 부양에 나선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부동산 처분으로 기업의 자구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의 토허제 구역을 전면 해제했다. 위기를 겪은 뒤 경제가 나아지고 부동산이 다시 움직이자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서둘러 토허제를 동원했다.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을 대상으로 명목상으로는 토허제지만 실상은 주택거래허가제를 강행했다. 아파트의 대지면적 지분을 허가 대상으로 삼은 편법 시행이었다. 그간 경과를 보면 토지공개념 주장은 시장 여건에 따라 규제를 강화해 투기를 억제하려는 명분일 뿐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헌재의 합헌 결정도 부동산 투기가 만연해 자산가치가 왜곡되고 불로소득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제한임을 인정하면서도 사유재산의 본질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집값 동향과 대출 규제 등을 감안, 당분간 주택시장이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판단해 지난 2월 12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3개 동의 토허제를 해제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실수요자의 거래를 정상화하고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움직임과 함께 국내에서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국은행과 정부가 금리와 금융 규제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 속에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 시장의 오름폭이 커졌다. 학군과 학원 수요가 몰려 있는 강남 송파의 매수세에 토허제 해제와 금리인하 전망이 고삐를 풀어준 셈이었다. 집값을 잡겠다며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을 중과한 조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가 몰린 곳에 매수세를 더욱 집중시켰다.
 
해제 이후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빠르게 올라 신고가가 속출했고 거래량도 늘었다. 학원들이 밀집한 대치동 지역에서는 중소형 아파트값이 평당 1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대형 아파트가 몰려 있는 청담동 일대는 오래간만에 거래가 이뤄져 오름폭이 더 높았다고 한다. 오 시장은 35일 만에 해제를 철회하고 성급한 발표를 시민에게 사과했다.
 
주택거래 제한은 자의적 운용
 
아무리 합헌이라 해도 개인의 재산권 제한이 명백한 제도를 무작정 끌어갈 수는 없다. 해제 동기가 어디에 있든 시민 권리를 보호하려는 오 시장의 취지를 탓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장 흐름을 신중하게 고려해 시기를 선택하고 중앙정부나 금융권과의 조율을 충분히 거쳐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대통령 탄핵과 권한대행 탄핵에 따른 행정 공백으로 각 부처의 업무수행 범위와 능력이 크게 떨어진 시기에 서울시가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버거운 조치였다. 국토교통부는 협의를 통해 서울시와 부동산 정책을 사전 조율해야 마땅한데 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금리와 재정에 관한 조율도 미흡했다. 서울시의 부동산 헛발질은 탄핵 정국에 빚어진 행정 공백이 겹쳐 부작용을 더했다.
 
그 역풍으로 토허제 대상 구역이 종전 강남과 송파구 4개 동에서 서초구를 포함한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역으로 늘었고 주변으로 번져 나가는 풍선효과까지 걱정하게 됐다. 대상 구역이 무리하게 확대되면 재산권 행사에 대한 제한이 침해 수준으로 심각해져 다시 헌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해제 소식을 믿고 상속세 등 납부세액을 준비하거나 이사를 위해 아파트 거래를 서둘렀던 주민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다. 시민 입장에서 보면 재산권 행사에 따른 제약이 행정당국의 귀책 사유로 인해 오히려 심해졌다. 토허제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당연히 따른다. 변칙으로 주택거래를 제한하는 토허제를 전면 손질해 시장 여건에 맞도록 개정하는 게 마땅하다. 무리하게 고집하면 더 큰 부작용과 시장 혼란을 자초하게 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