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칼럼] 곧 나올 추경 규모 놓고 줄다리기 한창

2025-04-11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올해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역대 최악의 대형 산불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충격으로 인한 피해 지원이 시급해 조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규모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더 이상 위기대응을 늦출 수 없다”며 “정부는 다음주 초 10조 원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급격한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인공지능(AI)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추경에서 약 3조∼4조 원을 지원하고 서민·소상공인 지원에도 3조~4조 원을 배정하겠으며 산불 피해 복구·방지예산도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더 구체적인 내용은 금주 중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확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여당인 국민의힘의 권성동 원내대표는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고 전제하고 "기존 10조 원 규모의 추경 계획을 재검토해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경기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내수진작 예산을 과감히 늘리길 바란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산불뿐만 아니라 민생안정을 위해 국민 1인당 25만 원 지역화폐 지원 등 충분한 추경이 필요하다면서 30조 원 이상의 추경편성을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정부의 계속된 추경 편성 지체는 거시경제 안정 도모라는 정부책무를 유기한 것이자 예산 편성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또한 참여연대, 금융소비자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도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30조 원 이상 추경 편성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민생회복을 위한 추경과 민생 5법 처리를 촉구했다.
 
추경 규모를 둘러싼 이 같은 대립은 대규모 재정적자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 때문이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104조 8000억 원으로 2022년 이후 불과 2년 만에 다시 100조 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적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유난히 추경 집행이 많았던 2020년의 112조 원과 2022년의 117조 원 적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국가채무는 1175조 2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48조 5000억 원 늘어났다. 이만큼 부채 상환 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긴 것이다.

재정적자가 이처럼 확대된 이유는 경기 위축으로 지난해 세수가 30조 원 이상 크게 쪼그라들었고 그만큼 지출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추경 편성을 자제하는 등 나름대로 씀씀이를 억제한다고 했는데도 그랬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4.1%로 정부가 정한 재정준칙인 3%를 2020년 이후 5년째 웃돌았다.
 
올해도 재정적자가 지속돼 재정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과 이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 가속화 등으로 올해도 연 3년째 대규모 세수 펑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산업계 피해 최소화와 소상공인 지원 등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현재 10조 원의 추경을 준비 중이고 게다가 정치권에선 추경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올해 적자 규모는 80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국고가 텅텅 비어있어 고스란히 나랏빚이 되는 국고채 발행을 통해 추경 재원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올해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도 또다시 3%를 넘길 것이 확실시된다.
 
국내 경제는 지난 1월 주요 지표인 생산, 소비, 투자가 모두 급감하며 트리플 감소세를 나타냈다. 설상가상으로 수출마저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2.1%나 감소, ‘쿼드러플 추락’ 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산적한 대내외 악재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정상 항로를 벗어나 급하강을 거듭할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6월 3일로 정해진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공약 남발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이젠 여당마저 표를 의식, 수출기업 지원 및 내수 진작 예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경제가 이처럼 극심한 침체가 예상되고 물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많이 풀어 경기를 살려야 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대규모 재정적자가 걱정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가 정치권의 압박에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다. <투데이코리아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