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설득력 없는 게임 속 ‘억지’ PC 요소···이제는 자중해야
2025-06-05 김지훈 기자
이는 해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올라온 어쌔신 크리드의 최신작에 대한 글 중 하나로, 최근 게이머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불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게임 속 과도하게 삽입된 PC(Political Correctness) 요소에 대한 피로와 반감이다.
PC란 인종, 성별, 종교, 성적 지향, 장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지양하고 모두를 포용하자는 사회적 철학 및 사회운동을 뜻한다.
물론 오늘날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문화의 일부가 된 만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등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권 게임을 중심으로 게임 본연의 재미와 개연성을 무시한 ‘PC 끼워넣기’가 콘텐츠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소규모 인디 게임 뿐 아니라 대기업의 AAA급 게임에서도 PC를 과도하게 의식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개발사가 비판을 피하고 글로벌 여론의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사실성과 개연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무결한’ 게임을 지향하고자 ‘정치적 안전망’로서의 기능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게임사의 움직임은 신규 수요층 확보 때문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회학 연구자인 최태섭 작가는 지난 2021년 자신의 저서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에서 “옛날에는 문화콘텐츠들이 서구 백인의 시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시장을 넓히는 과정에서 항의를 받으며 점차 PC에 대한 인식이 형성됐다”며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소비자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러한 요소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게임이 대중화되면서 사회적으로 고려해야 할 책임도 커진 것”이라며 “그러한 생각을 게임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개연성을 위한 장치들이 함께 적용돼야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그의 분석처럼 PC 요소를 과도하게 반영한 글로벌 게임들이 게임성과는 별개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니 산하 ‘파이어워크 스튜디오’가 8년간 개발한 슈팅 게임 ‘콘코드’(Concord)가 꼽힌다.
해당 게임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유저들은 과도한 PC에서 비롯된 ‘매력 없는 캐릭터 디자인’, ‘논바이너리 및 트랜스젠더 설정’이 몰입을 방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여러 악재와 겹치면서 해당 게임은 출시 2주 만에 피크타임 동시접속자(스팀 기준) 697명에 그치며 서비스를 종료했다.
또한 EA의 축구게임 ‘FC24’도 여성 선수와 남성 선수를 동일한 팀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하며 논란을 낳았다.
보통 축구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로 인해 수준 차이가 큰 편에 속하는데, 해당 게임에서는 일부 여성 선수가 유명 남성 선수와 비교해도 높은 능력치가 부여됐다. 이를 두고 일부 축구 팬들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발했다.
이외에도 게임 속에 개연성이 없는 등장인물을 출현시키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비소프트의 대표 타이틀 중 하나인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철저한 역사고증으로 인해 수많은 팬덤을 보유한 게임 타이틀였지만, 3월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경우 일본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야스케가 비록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지만, 메인 시리즈 최초로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 굳이 그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야 되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개발진의 해명 아닌 해명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개발진은 “일본인이 아닌 우리 눈이 돼 줄 인물이 필요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재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외에도 블리자드의 유명 FPS 게임 ‘오버워치’ 또한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공개하며 인물을 성소수자로 밝히는 등 기존 서사와의 괴리감이 발생했다. 오히려 블리자드가 게임속에서는 포용을 강조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내부 직원이 인종차별을 겪고 퇴사한 사실이 드러나며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물론 게임이 오락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메시지는 자발적인 몰입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강요된 메시지나 설정은 오히려 반감만 불러온다. 다만, 과도한 반감은 오히려 다양성 논의를 가로 막는 장벽이 될 수 밖에 없다.
일례로 지난해 X(옛 트위터)에 등장한 ‘PC 주의 게임 블랙리스트’는 유색인종 주인공이나 동성애 선택지를 가진 게임들을 게임성과 별개로 무차별적으로 비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 게이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을 줄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억지러운 설정이 아닌 설득력이 있는 서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효남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의 ‘게임에서 정치적 올바름 요소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서도 게임 이용자들의 86%는 정치적 올바름에 반감을 드러냈지만, 다양성 인정과 차별을 줄이는 방향성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게임업계가 가장 기억해야될 부분은 게임 내에서 재미와 개연성 없이 설파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 아래 몰입감을 희생하는 제작 관행을 다시 돌아보고, 눈치 보는 ‘끼워넣기’가 아닌 개연성을 살린 명작으로 게이머와의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할 것이다. 게이머는 더 이상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며, 억지로 꾸며낸 진심 없는 콘텐츠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