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소비자 얕잡아본 마트 영업규제

무리한 선택권 제한에 반발 거세

2025-06-20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인지 감각과 동작이 예전 같지 않아 가급적 승용차 운전을 피하려 하지만 가끔 아내가 대형마트나 농수산물 도소매 시장에 갈 때는 보조 기사로 따라간다. 식음료와 채소 과일 등 사야 할 품목이 많고 무거울 뿐 아니라 주차를 위해 운전을 재빠르게 교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손녀까지 데리고 대형마트를 찾아 잠깐 더위를 피하면서 스포츠 등 관심 가는 상품들을 둘러볼 수 있다. 가락동 도소매 시장은 제법 거리가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해도 가격이 오른 과채류나 생선을 한꺼번에 사기 위해 찾는 곳이다. 대형마트에 비해 판매 및 보관 시설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나 가격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백화점부터 대형마트, 할인점, 전통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통시장은 소비자들의 취향과 패턴에 맞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마트를 찾거나 전통시장에 가는 시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가격과 물량, 그리고 가족 구성이나 직업, 생활 여건에 따라 소비패턴이 각기 달라 적합한 유통업체를 찾게 된다. 여유 있는 쇼핑과 함께 편의 문화시설을 원하는 고객은 가격은 다소 비싸도 백화점에 관심이 쏠리고 이용 시간대가 제한된 직장인과 맞벌이 부부 가정은 대형마트를 주로 찾는다. 가격 경쟁력은 아무래도 할인점과 전통시장이 유리하지만 공산품과 식료품 등 품목별로 또 차이가 난다. 서울과 수도권은 접근성에 따라 전통시장을 이용하기가 너무 먼 곳도 많다. 특히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온라인 거래가 급증하면서 시장 규모와 가격 경쟁력에서 이미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시장을 추월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국내 주요 유통업 매출 통계를 보면 온라인 업체의 비중이 54%에 달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 등이 나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다시 공휴일로 한정하는 법안을 추진해 유통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오 의원은 지난해 9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명하거나 의무 휴업일을 평일이 아닌 공휴일(일요일)로 명해야 한다’ 강제 규정을 두도록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냈다. 민주당은 이를 지난 3월 발표한 20대 민생의제로 채택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2011년 12월 발전법 개정으로 10여년간 시행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규제개혁 1호 과제로 제시해 의무휴업일 완화를 추진했다.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가 이뤄지면 평일도 휴업이 가능하게 했다. 이에 따라 당시 홍준표 대구 시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출신 단체장들이 대부분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었는데 오 의원 등은 다시 한 달에 두 번 공휴일(대부분 일요일)만 휴업하도록 되돌리는 개정안을 냈다.
 
유통업계만이 아니라 소비자들까지 사실상 선택권을 제한하는 입법이라고 거세게 반발한다. 유통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를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맞벌이 부부와 젊은 세대 주부들의 반발이 가장 먼저 감지된다. 이들은 공휴일이면 가까운 대형마트를 찾아 쇼핑하면서 인근에서 식사와 휴식을 겸하는 가족들이 적지 않은데 무조건 문을 닫으라는 요구는 소비자 선택권을 아예 무시한 일방통행이라고 주장한다. 선택권 제한은 듣기에 따라 정치권이 전통시장을 찾으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조치로 들릴 수 있다. 소비자에게 매우 불쾌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우월감 아닌지
 
유통시장을 대형마트-전통시장의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시대 흐름에 한참 뒤떨어지는 인식이다. 이미 온라인 거래가 오프라인을 앞지른 여건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매출이 올라가기를 기대하기 난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2년 농촌진흥청 소비자 패널 자료를 기반으로 130만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일요일)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이 610만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한 일요일 구매액(630만원)보다 낮게 나타났다. 온라인몰은 의무휴업일 식료품 구매액이 평균 8770만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에 비해 130만원 많았다. 대형마트 고객들이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으로 가기보다 온라인을 이용한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소비자들과 업계 반발 등 영향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발전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은 아직 국회 소관위원회에 상정돼 심사가 진행 중인데 민주당은 정부·여당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용기 의원 등은 반대 의견을 공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 과제로 민생을 꼽으면서 ‘실용적 시장주의’를 제시했다.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결과를 중시하는 시장경제원칙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민주당도 대기업-소상공인 구도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마땅하다. 다수당의 위력을 내세워 선택권을 제한하려는 발상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주의 원칙을 다짐할 때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