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명의 외교 시험대, 우경화 동맹을 상대하라
2025-07-31 진민석 기자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말로 알려진 이 문장은 오늘날 국제정치의 흐름을 설명하는 데 더없이 적절하다.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던 백악관에 재차 발을 들여놓은 후 전 세계가 다시 한번 ‘자국 우선주의’ 기조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은, 과거와 같진 않지만 묘하게 닮은 역사적 리듬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귀환은 단지 정권 교체가 아니라, 포퓰리즘과 국수주의라는 정치적 흐름의 귀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그에 화답하듯 우경화의 바람이 거세다.
특히 일본에선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대신, 극우 성향의 ‘참정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축으로 떠올랐다. 가미야 소헤이 참정당 대표는 ‘일본인 퍼스트’를 기치로 내세우며, 이민 반대, 역사 교과서 수정, 국방력 강화 등 전형적인 극우 어젠다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자민당 내 대표적인 우경화 인사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역시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적 기지 선제 타격론’과 ‘핵 공유’ 등 과거엔 급진적이라 여겨졌던 안보 구호들이 이제는 주류 정치 의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이라는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우경화 흐름은 결코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이는 전 세계적 정치 지형의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특히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본산으로 여겨지던 유럽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목격된다.
이탈리아에선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정부가 반(反)이민·반EU 기조를 지속하고 있으며, 헝가리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 체제 아래 ‘비서구적 가치’를 강조하는 독자 노선을 굳히고 있다. 폴란드 역시 법과 정의당이 반LGBT, 반난민 정서를 자극하며 강경 보수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서구 자유주의의 본산으로 불리던 국가들이 하나둘씩 우경화 기조로 이동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유럽의 우경화 흐름은 단순히 해당 국가들의 정책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국제 규범과 연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제무대에서 민주주의, 인권, 다자주의 같은 가치 기반의 외교적 연대가 흔들릴 경우, 한국 역시 외교적 선택지를 좁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간 대한민국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축은 한미일 삼각 공조였다.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며, 글로벌 공급망 안보와 기술 동맹을 구축하는 데 있어 세 나라의 전략적 일치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나란히 우경화 노선을 타면서, 그 공조의 본질과 방향성 자체가 바뀌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는 자국 우선의 관세 압박, 방위비 분담금 인상, 글로벌 동맹에 대한 회의주의를 다시 꺼내 들었고, 일본 역시 안보 분야에서 점점 더 군사적 자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이 이 변화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는 인상이다. 오는 25일로 예정돼 있던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의 ‘한미 2+2 경제안보협의체 회담’은 연기됐다. 아울러 최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이 갑작스럽게 취소되기도 했다.
모두 일정 조율 문제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정작 다른 국가와는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후순위로 밀려나 소위 ‘패싱’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한미일 삼각 축 안에서 한국의 무게감이 과거보다는 다소 줄었음을 방증한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이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돌파할 것인가다.
기존 정부들이 강조했던 ‘가치 동맹’이나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복잡다단한 국제 질서 속에서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이라 하더라도 경제·안보 등 실익이 명확하지 않으면 언제든 냉정하게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을 집권 1기에서 이미 보여줬다. 오히려 2기에 들어와선 그러한 기조가 더욱 다분해보이는 실정이다.
일본 역시 새로운 우파 연합의 중심에서 한미일 공조를 자국 안보 재무장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만이 여전히 기존의 ‘균형자’ 정체성에 머무른다면, 2020년대 후반 국제 질서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로버트 퍼트넘은 ‘양면게임’(Two-Level Game) 이론을 통해 외교가 국제 협상 테이블(Level I)과 국내 정치 테이블(Level II)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게임이며, 한쪽의 역학은 반드시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했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이 유지하고 있는 현재 강고한 국내 정치 기반은 외교 협상에서 유리한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국내 지지 기반이 견고할수록 국제사회는 그 협상의 실효성과 신뢰성을 높게 평가하게 마련이다. 즉, 지금이야말로 이재명 정부가 보다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전략 외교를 펼칠 수 있는 시점이다.
국제 협상에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국내 정치적 확실성이다. 퍼트넘의 이론이 시사하듯, 지금처럼 국내 지지 기반이 확고할 때야말로 외교 무대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단순한 방어가 아닌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연대 외교로 이재명 정부의 존재 이유를 입증할 시간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 두 개의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하나는 현실적 안보 환경에 맞춰 외교 전략을 전면 재정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질서를 수성하려는 낡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변화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 우경화의 파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항로를 설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격랑은 오히려 외교 주도권 확보의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