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소비쿠폰 써보니

기대 컸지만 단기 효과에 그칠 듯

2025-08-01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다기에 필자도 소비쿠폰을 7월 하순 신청해 며칠간 사용했다. 은행 통장에 연동해 평소 쓰던 신용카드로 신청했더니 ‘회복과 성장의 마중물’이라며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됐다는 알림톡이 뜨고 이후 매회 사용처별로 내역이 통보됐다. 점심 식대부터 당구클럽 선불카드, 제과점 빵과 편의점 우유·음료수값, 그리고 동네의원 진료비와 약값 등 지출 내역이 차례로 들어왔다. 1주일가량 지나 쿠폰이 소진됐다. 소비 진작을 위한 마중물이라기보다 평소 생활비 항목들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쓴 셈이다. 다만 후불카드 월별 결제일에 이미 적립된 쿠폰 금액이 먼저 빠져나가고 나머지를 은행 계좌에서 채우게 됐다.
 
결제 후 계좌 잔고가 쿠폰 액수만큼 덜 감소한다 해서 ‘공돈’이 생겼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계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빠듯한 살림에 생활비 일부를 소비쿠폰으로 채우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생활 방식대로 잔고가 약간 남았어도 다음 달 결제에 맞춰 씀씀이를 아끼고 소득세나 재산세 등 납부에 대비해야 한다. 혹시 과표가 오르거나 정부가 부동산까지 증세에 나서면 연말쯤 소비쿠폰으로 받은 액수의 몇 배에 이르는 세금 고지서가 날아올 수도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마중물 효과란 펌프 아래의 수원이나 지하수가 충분해야 가능한 일이다. 수위가 낮은 상태에서 마중물을 부었다가 물만 빠져나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소비쿠폰 지급에 따른 경기 회복에 기대를 거는 소상공인들이 적지 않으나 일시적인 매출 증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칫 반짝 회복에 이은 거래 격감이 찾아오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 19가 맹위를 떨칠 무렵 문재인 정부가 전 국민 지원금을 제공했을 당시 지원금에 의한 매출 증대 효과가 업종별로 3~6주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증세와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을 면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31조8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이 가운데 13조2000억원을 민생지원금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하고 있다. 두 차례 추경편성에 따라 21조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해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세수파탄을 초래했다면 ‘조세 정상화’를 위해 당내 특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4%에서 25%로 올리는 방향으로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부자 감세’를 되돌리겠다는 주장이다.
 
재계는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번째로 높은 수준이며 소수기업에 부담이 집중된다는 사실을 들어 인하를 요구해 왔다.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려면 법인세율 등을 여건에 맞게 낮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높여 대내외 경영환경까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담은 개정 상법을 이미 통과시킨 민주당은 집중투표제와 자사주 소각의무를 포함해 더욱 강력한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돈잔치에 들뜬 분위기 경계해야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 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에서 ‘원청 사업자’로, 합법적 쟁의 대상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모든 경영 행위가 노조 쟁의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며 불법 파업이라도 노조의 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조항까지 포함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노란봉투법을 ‘더 미루지 말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용적 시장경제를 추진하겠다는 종전 발언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경영자총연합회 등 재계 단체는 “노동계의 요구만 반영해 법안이 통과된 것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유럽계 기업 400여곳을 대변하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경우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법인세뿐 아니라 증권거래세율을 올리고 주식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도 늘리기로 했다. 부동산 과세표준을 올려 재산세 등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까지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민생 회복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소비쿠폰을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고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나 재정 지출은 결국 국민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1인당 15만~55만원 쿠폰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 위해 13조2000억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행정 부대비용만 해도 지역화폐 발행비용 205억원, 선불카드 발급 52억원,인건비 172억원 등을 더해 550억원에 이른다.
 
국가부채 급증을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와 여당이 ‘조세 정상화’를 강행한다면 추가 증세가 불가피하고 이는 다시 경제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한쪽에선 돈을 풀고 다른 쪽에서 돈을 빨아들이는 식으로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하다가는 경제가 어디로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게다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을 강행하기에 이르면 경제 회복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돈잔치 벌이고 선거 승리 분위기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