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병희 체인지업그라운드] AI시대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2025-08-12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Sumio Iijima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일본 과학자로, 언제 노벨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 그가 성균관대 나노기술원의 원장으로 부임할 당시 국가과제를 진행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분석해 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제 대부분 시골이나 교외에서 자라면서 자연을 많이 접하고 즐기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생들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둘러싸여 책과 수업에서 다루는 지식에 의존해 성장하는 도시의 학생들보다 좋은 과학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9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로버츠 교수는 기자의 질문에 “노벨상의 비결은 퍼즐 놀이와 좋은 선생님, 그리고 운”이라고 답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퍼즐놀이와 탐정놀이를 통해 길러진 호기심과 탐험심이 자신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학교 뒤에 있는 석회암 동굴 탐험을 하면서 탐정의 꿈을 키웠다고 하니 로버츠 교수 또한 도시의 학생은 아니었던 듯하다. 

성균관대에 조교수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덥수룩한 머리의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한 학생이 대학원 입시 면담을 위해 찾아왔을 때도 ‘혹시 공부 말고 잘하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보다 게임을 더 열심히 했고, ‘스타크래프트’ 대회 전국 4강까지 진출했었다는 것이다. 

게임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나름 판단력과 순발력, 창의적이고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게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뭔가 게임에서 쌓은 능력들을 연구에 쓴다면 좋은 연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연구실 첫 번째 대학원생으로 선발하게 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전공지식을 습득하고 보통 학생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실험 시에는 항상 단축키를 쓰고 마우스 커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컴퓨터를 다루다 보니,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그래핀의 연속 생산에 대한 기념비적인 논문을 네이처 나노테크놀러지에 표지논문으로 출판하였고 이 논문은 전세계 재료과학분야 6위, 한국 과학 역사상 2위의 인용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 시인이 되기 위해 자퇴를 하기도 했고,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시에는 낙제점수를 받기도 했다. 우연히 저명한 수학자의 강연을 듣고 수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후 수학자의 길에 들어섰고, ‘함께 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자세로 여러 스승, 동료들과 교류하고 협력한 결과 12개에 이르는 수학 난제를 해결하고 필즈상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허준이 교수는 어렸을 때 구구단도 버거워했고 고등학교에서의 수학 성적은 보통에 불과하였으며, 입시교육을 따라가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위의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대치동 학원가에서 정형화된 교육을 통해 키워진 명문대 학생들 보다는, 도심에서 떨어져 특별하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사고력을 키운 학생들이 뛰어난 과학자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도 입시경쟁의 정점을 통과한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는데, 그중에서 학부과정 내내 A+을 놓치지 않는 능력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났던 학생들의 진로를 추적해 보면 학점과 연구 능력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오히려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극대화하다보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제한되고 우수한 연구자로서의 성장이 저해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책에서 오지 않는다.

빅데이터, 머신러닝, 딥러닝, 신경망 AI 반도체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없는 지식을 창조해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AI는 대자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신비를 체험할 수도, 친구들과 뒷산 동굴에서 탐정 놀이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AI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AI가 할 수 없는 것에 주목해야 하고, 교육의 패러다임도 AI 시대에 맞게 철저하게 변화해야 한다. 외우고, 정리하고, 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입시 위주의 줄 세우기 교육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개발한 AI 기술의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AI 시대에 지식의 축적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한 능력은 교과서와 강의, 답이 정해진 시험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운 ‘놀이’와 무작위적이고 차별화된 ‘경험’, 그리고 자신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다양한 ‘만남’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이를 반영한 창의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은 AI 시대의 절대적 과제이며,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홍병희 서울대학교 교수 약력
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그래핀연구센터장
현) 그래핀스퀘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