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제인과 ‘원팀’ 외치기 전 ‘소통’부터
2025-08-25 김신웅 편집국장
국내에 진출한 800여개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과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등 외국계 기업 대표 경제단체 뿐만 아니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국내 경제 6단체까지 반대했던 그 법이 결국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재석 의원 186명 중 찬성 183명, 반대 3명으로 의결했다. 경영자들은 둘째 치고 국민들의 지지조차 엇갈린 상황 속에서 직진을 택한 것이었다. 올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를 앞두고 국제 사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할 수 있다는 암참 회장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계 전반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와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도 제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용자 범위를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 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해 원청의 하청과의 노사 교섭 의무를 규정하고, 노조의 합법 파업의 범위를 ‘노동 처우’에 더해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으로 넓힌 것이 특징이다.
노란봉투법의 뿌리는 2009년으로 올라간다. 2009년 5월부터 8월까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발표 등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총파업에 나섰다. 이에 쌍용차는 노조의 총파업에 맞서 ‘직장폐쇄’ 조치를 취했으며, 경찰은 헬기와 기중기를 동원에 진압에 나섰다.
또한 같은 해 7월 20일 수원지법 평택지원 집행관과 회사 측 변호사 등이 노조 측에 퇴거명령 최고장을 전달하려고 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특히 경찰이 법원의 강제집행을 지원하고 노사충돌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경찰력을 전진배치시키자, 도장공장 옥상에서 결사항전을 외친 노조원들이 타이어 10여개에 불을 붙여 경찰력 쪽으로 굴리는 등 상황이 격화되기도 했다.
당시 2009년 8월 6일 노사 타결이 이뤄진 후 나온 각종 보도 내용에 따르면, 노조의 77일 점거 파업에 따른 파업의 생산 차질은 1만4590대, 손실액은 3160억원에 달했다. 1차 협력업체 32곳 중 4곳이 부도나 법정관리를 밟았고, 25곳은 휴업 중이었다. 2차 협력업체 399곳 가운데 95곳이 부도·폐업·휴업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러한 막대한 피해에 회사 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2013년 재판부는 “쇠파이프, 화염병 등 폭력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평택공장 생산시설을 전면 점거한 불법파업”이라며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47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다만, 한 시민이 4만7000원을 노란 봉투에 담아 언론사에 보냈고, ‘10만명이 4만7000원씩 모아 47억원을 갚자’는 성금 캠페인으로 확산되면서 입법 추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해당 법을 두고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폭탄을 막을 것이란 노동계의 입장과 불법파업을 조정할 것이란 경영계의 우려가 팽팽히 맞서면서 공방만 이어오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2023년 11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좌절됐다. 지난해 재표결에서도 부결됐다.
그렇지만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노란봉투법은 속도를 내고 이날 통과된 것이었다.
다만, 노란봉투법을 두고 너무 성급하게 처리했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는 상황이다. 가장 문제인 부분은 사용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선진국 수준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사용자 범위 확대를 법에 명시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독일, 미국, 프랑스는 노동쟁의를 하더라도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며 다른 근로자를 쓰는 대체근로도 가능하다는 등의 안전핀도 마련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국민 대다수의 동의나 이해관계 설득 없이 일차원적으로 추진한 법안이란 비판도 나온다. 국내 경영계 뿐만 아니라 해외 경제단체, 국민들의 설득 작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실제 대한상의가 소통플랫폼을 통해 성인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조법 개정 관련 국민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 76.4%는 법 통과시 노사 갈등이 보다 심화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시행시기를 1년 이상 늦춰 노사 협의가 반영되도록 요청했던 경제단체들의 요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목표와는 다르게 오히려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의 고율 관세 폭탄을 맞은 한국의 철강수출은 1년 반 만에 20톤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고, 이달 18일부터 냉장고, 변압기, 엘리베이터, 전선·케이블 등 철강이나 알루미늄을 활용한 파생상품까지 50% 관세가 적용되면서 업계 전반에서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이다.
이미 위기에 내몰렸던 석화업계에 대한 뒤늦은 지원책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업계에서 요구해왔던 전기료 인하나 세액 공제는 담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2014년 발표된 일본 정부의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을 기대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주요 의제들을 강압적으로 밀어 붙이려한다는 강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특히 정치인 사면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취임 초기에 리스크를 털고 가자는 정무적 판단이 깔렸다는 대통령실 인사의 발언도 다시 재조명되는 상황이다. “수출 여건 변화로 정부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원팀’ 발언이 무색하지 않으려면, 채찍만 휘둘러서는 안될 것이다. 원팀은 강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쇼가 아닌 소통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원팀이 되는 첫 단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