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칼럼] 개혁(改革)일까, 개악(改惡)일까
사(私)가 끼면 개악, 백년대계(百年大計)면 개혁
2025-08-27 권순직 논설주간
이 밖에도 지난 정권이 실행한 갖가지 정책을 뒤집거나 철폐하기다. 아울러 과거사 정리네, 적폐청산이네 하면서 정치 보복이 한동안 계속된다.
한두 정권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런가 보다 할 텐데, 정권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니 국민들은 짜증 난다.
왜 그럴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런 정치, 통치 행위들이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정권 초기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
‘언론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언론 길들이기, 언론 장악 시도는 집권 세력에게 절대 우선순위를 갖는 메뉴다.
과거사를 돌이켜보면 보수건 진보건, 군사 정권이건 민주화 정권이건 방법과 정도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나 이사진 구성 방법의 변화를 통한, 이른바 ‘공영방송 정상화’ 시도는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친여 친정권 방송 유인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영방송 구조 개선과 함께 추진하는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도 논란이 많은 문제다.
잘못에 제동을 거는건 당연하다. 그러나 자칫 그런 규제들이 언론 보도를 위축할 우려가 많다는 지적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그래서 선진 민주국가들은 언론에 관한 규제 문제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중대한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까지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기존의 장치들, 예컨대 잘못된 보도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장치도 있고, 민사상 손해배상 같은 구제 절차가 존재한다.
이런 장치들이 미흡하다면 보완할 수 있다. 정권이 맘대로 규제를 만든다는 건 자칫 언론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서로 낯 뜨거운 알박기 인사 논란
일반 기업에선 고위직 간부 인사가 임박하면 그 고위직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를 멈춘다. 후임자를 존중해서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서둘러 이곳저곳 주요 직책 인사를 단행한다. 알박기 인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국무위원급 인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임기직이고 임기가 남았다며 버텼다.
이번엔 공수(攻守)교대.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이재명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역시 임기가 남았다며 물러날 기미가 없다.
이렇게 되면 무슨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하고, 재임 중 사소한 잘못이라도 없는지 먼지 털기가 시작된다.
21세기 선진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정권 바뀔 때마다 행해지는 낯 뜨거운 행태다. 누가 누굴 비난하기도 얼굴 뜨거울 일이다.
미국은 대선 주기에 맞춰 4년마다 대통령 임기와 함께하는 주요 직책을 정리한 책자(플럼북)를 발행, 이런 문제를 사전 예방한다.
우리도 여·야가 합의하여 이런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를 해오다가도 집권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걸 바꾸지 않으니,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그 피해는 국민이 본다.
적폐 청산, 인사 보복 되풀이도 문제
말은 그럴듯하다. 적폐 청산, 과거 정리, 인적 청산 등등…. 정권이 바뀌면 초기 1~2년은 으레 이런 용어들이 세상을 뒤엎는다.
미운털이 박힌 전 정권 인사들을 감옥에 가둬놓고, 지난 정권에서 행한 정책들을 세심한 점검 없이 철폐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국민의 뜻을 널리 구하지 않는 데에 기인한다. 윤석열 정권이건, 이재명 정권이건 50%를 조금 웃도는 국민 지지로 탄생했다.
집권 했다 해서 모든 것을 자기들 맘대로 해선 안 된다. 지지자가 51%였다면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49%다. 51%가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49%도 소중한 국민이다. 존중받아야 한다.
모든 정책이, 특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행위들 모두가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이뤄져야 마땅하다.
그렇지를 않으니, 정권이 바뀌면 정책의 영속성이 없어 폐기되는 악순환이 비일비재다. 국력 낭비다.
모든 개혁 과제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의견 수렴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공청회 같은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생략하면 훗날 폐기되거나 부작용을 빚는 일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집권 세력에 유리하다고 정책이나 개혁을 밀어붙이면 개악(改惡)으로 흐를 우려가 높다.
개혁(改革)은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토대로 추진되어야만 성공한 개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