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15년 더 걸려도 원전 지어야
AI시대,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
2025-09-19 김성기 부회장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을 기념한 기자회견에서 원전 추가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우려를 낳았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 원전을 짓자고 하는데 기본적인 맹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원전을 짓는 데 최소 15년이 걸리고 지을 곳도 지으려다 중단한 한 곳을 빼고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 대통령은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짓는 것”이라고 했다. SMR(소형모듈원전)에 대해서도 “(아직)기술개발이 안 됐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 대통령 발언은 AI 데이터센터 등에 전력수요가 급증할 전망이지만 당장 원전을 지어 맞추기는 어렵고 우선 공기가 비교적 짧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취지로 들렸다. 문 정부 시절 탈원전의 역풍을 어렵게 견뎌낸 원전 업계는 이 대통령 발언을 탈원전 복귀 선언으로 받아들여 사업계획을 재검토하는 등 매우 위축된 모습이다. 원전용 각종 부품을 제작하는 기업들은 2032~2033년 완공 예정인 신한울 3·4호기 공사 이후에는 일감이 끊어져 국내 산업기반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한다.
실제로 국내 원전건설 기간은 착공부터 상업운전 개시까지 평균 6년 안팎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건설 중인 원전 4기는 문 정부 당시 탈원전의 여파로 공사가 늦어져 이미 가동 중인 곳보다 3~4년 더 걸릴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15년과는 차이가 크다. 그러나 착공 전 최초 건설계획 수립과 환경영향평가, 인허가 과정, 주민 설득 등 필요 절차를 감안하면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은 15년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정부 의지에 따라서는 그 기간이 거꾸로 대폭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원전 건설은 공사 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 좋은 전력을 일정하게 공급하는 안정성과 발전단가가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지목된다. 바로 산업경쟁력에 직결하는 요인들이다.
태양광·풍력 발전은 아직 보완 단계
전문가들은 태양광이나 풍력은 날씨에 따라 변화가 심하고 안정성이 떨어져 AI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전기를 제대로 공급하기 어렵다고 한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에너지원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전력이 밝힌 KWh당 에너지 구입단가는 원자력이 79.23원으로 비교적 싼 반면 LNG복합은 162.28원 재생에너지 123.58원으로 높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는 방안만으로는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어렵다. 일조량이 많고 냉난방 전력소비가 감소하는 봄, 가을에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넘쳐 일시적으로 발전을 강제 중단하는 출력제어를 실시하는 형편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망 인프라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 등의 군용 원자로에 기반을 둔 SMR은 기존 원전에 비해 출력이나 규모는 작지만 안전성이 높고 자동제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이미 상용화에 나섰다고 한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에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정부는 2020년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개발계획’을 발표해 공동 기술개발과 민간 부문 지원에 나섰다. 연내 표준 설계연구 첫 단계를 마무리할 방침이므로 내년 이후 정부 차원의 투자 확대가 요망되는 시점이다.
원전 건설과 기술개발은 대통령 임기를 의식한 정권 차원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가 걸린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과제다. 15년이 너무 길다고 고개 돌릴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긴 호흡으로 투자하고 지원을 이끌어야 한다. 실용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했던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지나면서 다른 의중을 내비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경계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