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돌아온 전공의, 떠나는 간호사···갈 곳 잃은 환자들은 어디로

2025-10-02     김시온 기자
 
▲ 김시온 기자
지난해 초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1년 넘게 이어진 의료계 갈등은 올해 들어 정부의 정책 수정과 협상 재개로 긴장은 다소 누그러졌다. 전공의 일부가 현장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그 빈자리를 메워온 간호사들의 불만이 새롭게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는 2018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와 공공의료 확대를 이유로 의대 정원 확충을 시도했으나, 코로나19 확산과 의사 파업으로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논의가 중단됐다.
 
이후 2023년 코로나19가 잦아들자 정부는 다시 의대 증원안을 꺼내 들었고, 2024년 2월 6일 최종 증원안을 발표하자 의료계는 깊은 유감을 표했다. 전국 대학 병원 전공의들과 의대에 다니는 의대생은 의료현장과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갈등이 시작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월 26일 전국 100개 병원에서 사직서를 낸 인턴·전공의 수가 1만3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전공의 수의 80%를 넘어서는 수치다. 실제로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 수도 9000명을 넘어섰다.
 
의대생들의 ‘집단휴학’ 사태도 동반됐다. 올해 1월 9일 기준 전국 39개의 의대에 재학 중인 의대생 1만9373명 중에서 휴학을 신청한 학생은 1만8343명으로 무려 95%에 달했다.
 
의료계의 이러한 강경한 대응에 정부도 물러서지 않고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는 등 ‘강대강’ 대치로 맞불을 놓으며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양측의 ‘냉전’이 이어지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2월 21일 강원도 양양군에서는 다리 괴사 환자가 3시간 30분가량 병원을 전전해야 했고, 같은 달 대전에서도 의료진 부족으로 다수 병원이 환자를 돌려보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두 사례 모두 ‘전공의 부족’이 원인이었다.
 
이 같은 의료진 공백으로 인한 피해 사례는 비단 몇 건에 그치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당하거나 수 시간씩 병원을 전전하는 일은 빈번했다.
 
그나마 의료 현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질타와 핍박에도 끝까지 소임을 다한 일부 의사와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덕이었다.
 
병원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은 의사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동료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등의 거친 비난과 욕설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 실명과 출신 대학, 소속 병원 등의 신상 공개를 당하기도 했다.
 
또 모자란 일손으로 인해 전공의들은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됐고, 병원 교수진들 역시 업무 가중으로 전공의들을 위한 교육이나 수련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
 
PA 간호사들은 법적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힘썼다.
 
당시 의료법상 PA 간호사의 역할은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를 보조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어 전공의가 수행하는 역할을 대신하는 행위는 불법 소지가 있어 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한시적으로 운영했고, 국회는 지난해 10월 본회의에 제출된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PA 간호사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간호법을 두고 일부 간호사들은 구체적인 PA 간호사 자격요건이나 업무 범위가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사 단체들 역시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PA 간호사로 채우는 것은 전공의 수련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전공의가 부족한 의료현장을 지탱하기 위해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에 PA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에서 전공의들이 맡았던 일부 업무를 대신해 수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올해 4월 17일 정부가 의대생 증원을 유보함에 따라 의정 갈등이 봉합되고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공의의 복귀로 인해 그들의 업무를 대신 해 오던 PA 간호사들의 포지션이 일방적으로 재배정 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간호사들은 ‘토사구팽’이라며 병원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 외에도 이들은 의료 공공성 강화와 인력 충원, 임금체계 개편 등을 요구했고, 일부 병원의 노동조합에서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이번엔 전공의가 떠난 의료현장을 지켜온 간호사들이 떠나가게 된 것이다.
 
전공의와 간호사들의 공백으로 인한 고통은 결국 또다시 환자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불합리하게 대우받는다고 생각하면 고용주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이는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그 교섭과 요구에 ‘환자’의 건강이나 목숨이 볼모로 잡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단순한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영역이다.